상대방 말을 진심으로 듣고 있습니까?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 작은 야산이 있어 외출이 없는 날은 꼭 등산을 한다. 등산하는 중에 가끔 만나는 개(Dog)가 있다. 개는 5살이라고 하는데 몸집이 매우 작은 개로 60대 초반의 주인아저씨가 데리고 다닌다. 이 개는 언젠가부터 나만 보면, 한참을 짖었다. 몇 달만에 만나도 용케도 알아보고 짖어대는 모습이 신기해서 하루는 아저씨께 농담 삼아 물었다. “재가 다른 사람한테는 그러지 않는데, 왜 나만 보면 짖어댑니까? 아무래도 저 개가 교회를 다니니까 자기와 종교가 다르다고 짖는 게 아닌가요?” “이 개가 다른 어른들을 보면 위압감을 느끼는데, 스님은 머리카락이 없으니까 어린애라고 생각하고 만만해 보여서 짖을 겁니다.” 이를 계기로 아저씨와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서로 안면이 있는데도 그 개는 여전히 짖어댔다. 매우 먼 거리에서도 나를 보면 코앞까지 달려와서 꼬리를 치며 짖었다. 솔직히 개 짖는 소리가 썩 반갑지 않았다. 나는 등산할 때마다 운동차원이 아니라 걸으면서 명상하는데 개 소리가 내 마음의 고요를 방해하는 소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저씨 말씀에 의하면, 예전과 달리 만나서 반갑고 좋아서 짖
뿌리 변경수 목사동녘교회 어린왕자가 사막에 볼품없이 피어있는 꽃에게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묻자, 꽃은 “몇 해 전에 봤지만 어디로 갔는지 몰라. 그들은 바람결에 불려 다니거든. 뿌리가 없어서 몹시 힘들게들 살고 있어”라고 대답합니다. 꽃이나 나무들은 평생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살아야하는 ‘식물’이어서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꽃은 거꾸로 뿌리없이 떠도는 ‘인간’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꽃의 시각에서 본 인간의 모습이 참으로 이채롭습니다. 나무가 빽빽이 심겨진 길을 걷다가 무심코 땅을 쳐다 보았습니다. 불현 듯 ‘저 높이까지 자라려면 뿌리도 저만큼 자라야겠지?’하는 당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뿌리는 깊어야 할뿐 아니라 깊이 들어갈만큼 굵어야 합니다. 뿌리는 나무의 키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크게 자라 있어야 자기를 밀어 올릴 수 있음을… 뿌리가 있기에 나무가 있음을… 보이지 않지만 뿌리의 성장이 있기에 나무의 성장이 있는 것이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김용옥 교수는 EBS ‘중용’ 강의에서 ‘대자연만큼 성실한 것은 없다. 자연의 성실함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무 한그루만 잘 관찰해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때를 맞춰,
내 인생에 첫 번째 치과 선생님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혹은 수도원에서 함께 살아온 형제들에게 듣는 나의 외모에 관한 여러 가지 표현 중 ‘눈이 예쁘다(!)’는 말과 함께 웃을 때 ‘치아가 가지런해서, 멋있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릴 적 우리 집이 잘 살아서, 치아 뽑을 때에 치과에서 전부 뽑았느냐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나의 모든 치아는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위로 세 분의 친누님들이 온 힘을 합하여 치아를 정성껏 뽑아 준 덕분입니다. 어쩌면 위로 누님 세 분이 내 인생에 처음 만난 치과 선생님인 것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대부분의 앞니 유치(乳齒)들이 흔들리면 세 분의 누님 중 한 분에게 말하면, 뭐 간단하게 뽑아버립니다. 실을 흔들리는 치아에 묶자마자, 나의 이마를 툭 치면 어느새 치아는 누님의 손에 들려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금니를 뽑을 때에는 문제가 좀 됩니다. 우선 어금니가 아플 때면 치통을 동반하고, 잇몸에서 피도 납니다. 그렇게 나의 아래, 위 어금니를 뺄 때가 되면 누님께 부탁드립니다. ‘누나, 이빨 뽑아 주세요!’ 그러면 우선 세 분의 누님이 무슨
못생긴 승려가 절집에 남는다 정운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선물을 받으면, 물건을 보호하기 위해 물건 주위에 놓인 가벼운 종이들이 있다. 나는 이 종이들을 버리지 않고 두었다가 택배나 소포를 보낼 때, 물건 틈새에 끼워 넣는다. 책상 옆 쓰레기통에 담긴 휴지를 재활용할 때도 있다.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을 다시 한번 이용하거나 쓰일 때마다 세상의 어떤 것이든 그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음을 새삼 상기한다. 속담에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흉터가 없고 쭉쭉 뻗은 잘 생긴 나무라면 목수들이 일찍 베어간다. 베어진 나무는 장롱으로도 쓰이고, 사찰의 기둥으로도 쓰이며, 가정집의 문짝으로 활용될 것이다. 하지만 울창한 숲속에서 산을 지키는 나무들은 대개가 못 생긴 나무들이다. 어떤 나무는 심하게 굴곡지어 있고, 어떤 나무는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휘어져 있고, 어떤 나무는 홀로서기 힘들어 다른 나무들과 서로 의지하며 커가기도 한다. 곧 잘 생긴 나무는 잘 생긴 대로 이름 값을 하는 것이요, 못 생긴 나무는 못 생긴 대로 숲속을 지키어 생태계를 유지해준다. 옛날 시골에서는 자식들을 다 공부시키지 못할 만큼
종|교|칼|럼|삶 이연희 플로렌스 수녀<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꿈 이야기 마무리 우리 수녀회가 치의신보에 글을 써달라고 부탁을 받았을 때 아마도 저는 ‘꿈 이야기’로 시작한 듯 싶습니다. 마지막의 글이 되는 이 달의 내용은 어떤 것이 될 지 저 자신 역시 호기심과 조바심으로 뒤섞이던 중 떠오르는 최근의 한 장면이 저의 얼굴에 미소를 띄우는 걸 보니 우연인지 필연인지 꿈이야기로 마무리가 되어질 듯 하여 신기하기만 합니다. 6월 초순 우중충한 날의 연속이었다가 처음으로 쨍!하고 해 뜬 날, 저는 유치원의 뒷동산에서 아이들과 풀잎 피리를 불며 어울리다가 와상에 누워서 푸르디 푸른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가 푸른 잔디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거든요. 곧 4살이 되는 남자 아이 ‘닐스"가 옆에 있어 누우라며 저의 왼팔을 벌렸습니다. 그 아이는 저의 팔을 베고 눕더니만 잠시 후에는 자신의 다리까지 저의 다리에 걸쳐 정겨움을 더해 주었지요. 그러다가 넓디 넓은 파란 하늘의 가장자리에 흰구름이 두둥실 걸쳐있어 저는 닐스에게 저의 꿈이야기를 했습니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을
종|교|칼|럼|삶 홍현정 사비나 수녀<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생명이라는 것은 저희 집에 좁쌀보다 조금 큰 열대어 몇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저희 수녀님이 방문한 어떤 수녀원에서 키우는 열대어들이 너무 예뻐서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치어 몇 마리 나누어주시더라고요. 작은 어항에 넣어 햇볕 잘 드는 거실 한 켠에 두어 하루가 다르게 제법 제 꼴을 갖추어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정말 조그맣고 연약해서 물 갈아줄 때 급한 마음에 그물질만 거칠게 해도 죽는 놈이 생깁니다. 금방까지 살아 생생하게 헤엄쳐 다니던 것들이 그렇게 죽거나 아니, 힘만 없어져도 마음이 언짢아집니다. 작고 약한 것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물이 차거나 더럽다, 밥이 모자르다, 혹은 빛을 좋아한다…. 그 말이 들리지 않아도, 그 몸짓이 크지 않아도 어쨌든 말을 합니다. 아니, 약할수록 더 강하게 외칩니다. 우리의 마음 한켠을 내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그렇게 마음자리를 내어주면 저절로 더 자주, 더 시간을 들여 살피게 되고, 살피게 되면 뭐가 필요한지 알아차리게 되고, 알아차리면 적절하게 보살필 수 있게 됩니다. 무릇 생명 있는 모든 것은 그래서 한편으로는
종|교|칼|럼|삶 나의 이웃, 나의 친구 ‘윌보르그’ 이연희 플로랜스 수녀 <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수녀원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페로 제도의 전통적인 집(지하창고 , 1층, 다락방으로 지어진 아주 작고 아담한 집)이 넓은 정원의 한 곁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재의 수녀원이 30여년 전에 지금의 자리에 지어질 무렵, 윌보르그는 바다를 향한 전경이 가로 막힌다며 무척이나 못마땅해 하였고 우리들뿐 아니라 외국인들에 대한 그녀의 눈길이 별로 예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이도 6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신 율리아 수녀님은 그녀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지요. 제가 8년 전 이곳에 도착한 뒤 그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지만 율리아 수녀님이 돌아가신 후에 혼자 사시는 그녀의 집의 문을 단순하게 그냥 두드리며 처음으로 방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결혼한 딸을 하나 가진 남편을 늦은 나이에 만나 결혼하여 당신의 자식은 없고 남편도 세상을 떠난 지 오래, 그야말로 홀로 사신 지 오래 됩니다. 그녀는 이 집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까지도 살면서 올해 93세가 되시니 이 집의 나이도 10
종|교|칼|럼| 삶 노석순데레사 수녀 <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공원을 거닐었습니다 휴식이 필요한 어느 이른 아침에 공원을 거닐었습니다. 호수를 둘러싼 벚꽃 길이 마음을 환하게 했습니다. 개나리, 진달래가 있고, 여린 새싹이 봄 햇살에 몸을 파르르 떨고 있습니다. 삭막한 도심의 풍경처럼 잘 닦여진 길 위에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길을 걷고 있고 무표정한 모습에는 한 겨울 침묵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방 우리 모두는 자연의 흐름 안에 함께 걷고 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한참을 걷다가 올려다본 벚꽃은 하나 같이 자신의 속살을 내 보이며 웃고 있습니다. 가슴을 열어 암술과 수술의 조화를 보여 주고도 깊은 곳 자신의 빛깔에 저의 시선을 모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숨길 것 없는 당당함으로 속살까지 활짝 열어 보이는 자연의 몸짓이 눈을 나도록 아름답습니다. 그 안에는 겨울을 지내온 각자의 사연이 빼곡히 자리해 있고, 어떤 과장이나 왜곡 됨 없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나무 한그루에 수천수만의 아름다움이 열려 봄이 오나봅니다. 수천수만의 진실이 열려 봄에는 이렇듯 생명이 자라나 봅니다. 감추고 있던
종|교|칼|럼|삶 홍현정 사비나 수녀<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흔들어라… 부드러워진다 유명한 소주 광고의 문구이죠. 한동안 지나가는 버스 곳곳에 이 문구가 붙어 있어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나 봅니다. 지난 일요일 저녁 하루를 되돌아보는데 갑자기 마음에 떠올랐으니까요. 그날 오후 일 년 전쯤 멀리로 이사간 이웃집 젊은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때 세 살과 두 살이던 세창이와 홍은이가 얼마나 많이 컸던지요. 세창이는 손가락 네 개를 펴며 자기는 네 살이고, 동생 홍은이는 세 살이라고 아주 또록또록하게 말합니다. 엄마 아빠와 이 근처에 왔는데, 제일 먼저 ‘수녀님 보고싶다’며 전화를 하라고 졸랐다더군요. 자벌레처럼 배로 기어 수녀원 조그만 거실 탁자 종단(?)에 성공할 때부터 엉금엉금 걸음마를 떼는 순간, 아빠 이름을 물어도 엄마 이름을 물어도 모두 ‘끙끙끙’ 박자만 맞추어 소리를 내는데도 유독 엄마만 다 알아듣고 저희에게 통역(!)을 해주던 때까지 지켜보던 세창이기에 그렇게 자라난 것이 눈이 부셨습니다. 너무 어릴 때 헤어져서 이렇게 예뻐해주던 옆집 ‘누나들을’작별 카드에 이렇게 쓰며 저희들끼리 키득
이연희 플로렌스 수녀<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고추장과 토마토 케첩의 만남 이곳에 처음으로 도착한 다음 해에 페로에 제도의 말을 배우기 위해 야간 학교를 다니면서 만난 친구들 중의 하나인 유타마스트는 태국인으로 이곳의 남자를 만나 동거하면서 4살짜리 아들 하나를 두고 있습니다. 가까이에 살아 가끔 방문하는데 지난 해부터 이 아들이 제가 일하는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여 더 자주 만나는 편이지요. 그리고 이 친구는 잘 퍼주는 사람입니다. ‘콩 한 조각도 나누어 먹는다’는 삶의 환경에서 자라난 저는 이를 아주 자연스럽고 정스럽게 받아들이지만 가끔 듣는 우리네 수녀님들의 반응은 제가 수녀원에서 못 먹고 못 입고 사는 걸로 아나보다고 놀리십니다. 그런 어느날 방문한 제게 그녀는 마른 생선 몇 마리가 담긴 봉지를 내밀며 아는 태국인이 하는 가게에서 샀는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가져 가라길래 생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대상으로 요리실험을 해보려는 심산이 있었지만 모두를 위한 요리라면 몰라도 혼자를 위해서는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생선 봉지가 오래동안 냉동실을 차지하고 있어 음식 살림을 담당하는 수녀
종|교|칼|럼|삶 노석순 테레사 수녀 <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산에 난 오솔길 산에 난 오솔길을 홀로 걷고 있습니다. 새로운 봄을 맞이하며 자연은 제각기 소리를 지르며 저를 나게 한 창조주께 온 존재로서 환호성을 올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깊은 고요가 있습니다. 고요함이 너무나 거룩해 평화 속에 잠기게 합니다. 한참을 걷다가 가파른 오솔길에서 숨을 몰아쉽니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봅니다. 아! 마음 안에서 부터 터져 나오는 감동에 몸이 떨립니다. 생명을 잃은 고목나무에 몸을 붙여 여리게 피어난 한 송이 들꽃이 저의 전 존재를 사로잡았습니다. 아무런 말없이 이곳에 흐르는 고요함과 호흡을 같이하며 바라보고 또 바라봅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마음이 열리고 깊은 내면에서 나오는 탄식과 무거운 그 무엇이 거침없이 터져 나옵니다. 그리곤 평화를 찾았습니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평화와 위안을 얻고선 다시 저는 그 길을 걷습니다. 가파른 오솔길에 고목과 생명을 나누며 아니 한 몸이 되어 핀 작고 여린 꽃은 고해의 은총을 가져 다 주었고 하느님과의 화해성사를 이루어 주었습니다. 고목나무에 핀 들꽃처럼 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