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겸손 정 운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어느 세월, 어느 공간에 살든 사람은 늘 아프기 마련이다. 홀로 수행자로 살든, 가족과 함께 살든 병이 들면, 외롭고 고독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비참하기까지 하다. 2500여년전 인도, 그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던 시대에도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한 스님이 병이 들었다. 그 스님은 식사를 할 수도 없었고, 옷에 오물까지 묻힐 정도로 거동할 수 없었다. 본인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스님은 매우 힘겨운 시간을 보내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처님 당시에는 승려들이 한 방에서 함께 거주하거나 한 공간에 함께 머물지 않았다. 홀로 거주하는 것은 수행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병든 스님이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방에서 혼자 앓고 있을 때, 부처님께서 그 사실을 알고 그 병자를 찾아와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혔으며, 죽을 준비해 병자에게 먹였다. 다른 제자들이 그 사실을 알고 부끄러움을 느꼈는데,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함께 수행하는 도반(道伴)끼리 서로 도와주며, 보살펴 주어라.” 경전에서 이 부분을 읽고 난후 나는 병자에 관한 내용보다 부처님의 겸손과 자비
생각이 문제다 박성현 교수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깨달음으로 가는 근본적인 작업은 마음을 쉬는 것이다. 정신의 기계가 멈출 때 모든 종류의 새로운 발견이 가능하다. 생각하는 능력은 훌륭하지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은 더욱 위대하다” (Aurobindo, 1968) 최근 보도를 보면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합니다. 또 삶의 행복도 지수는 OECD 국가 중 맨 아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물질 만능의 시대, 끝없는 경쟁의 시대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힐링 열풍이 전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고통으로부터의 치유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고통을 일으키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 예컨대 경제 양극화나 학력 위주의 경쟁 시스템 등을 바로잡아야 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우리에게 고통을 일으키는 내적인 요인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인도의 요기인 오로빈도는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깨달음의 핵심이라고 말
위로와 격려 변경수 목사동녘교회 요즘 사회적으로 ‘힐링’이 대세입니다. 성인 프로그램은 물론 아이들 프로그램도 무슨무슨 ‘치료’라는 말이 많이 들어갑니다. 치료는 ‘병이나 상처를 잘 다스려 낫게 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아이들 프로그램에 이 단어를 쓰는데에는 우리 아이들을 건강한 성장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치료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극심한 학습노동에 시달리고, 학원폭력, 왕따 등 홀로 자신을 세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는 사회환경 속에서 나온 표현법이 아닌가 합니다. 사람은 상처받기 쉬운 존재입니다.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습니다. 상처받았을 때 치유하지 않으면 왜곡된 삶을 걸어가게 되기 때문에 그때그때마다 몸과 마음을 다스려줘야 합니다. 몸은 보이기 때문에 뭘 해야하는지 아는데,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저는 마음의 상처에 가장 좋은 힐링은 ‘위로와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시처럼 ‘사람’(외로운 존재)에게 가장 큰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은 ‘괜찮아, 너! 정말 그건 잘했어, 잘될거야 걱정하지 마, 그랬군요’와 같은 지지하고 격려하는 말들일 것입니다. 위로(慰勞)는 ‘
믿음, 버림에서 시작하기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작년 가을 즈음, 지금 살고 있는 수도원 총본부 건물이 너무 낡아, 새로 공사를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 이유로 총본부에서 생활하는 모든 형제들은 공적인 물품 이외에, 꼭 필요한 개인 짐들만 챙겨두고 다른 분원으로 이사를 가야했습니다. 그리고 당장에 쓰지 않을 나머지 짐들은 개별적으로 박스에 담아 공동 창고에 보관했습니다. 그렇게 짐을 정리하는 동안, 지금 당장 필요한 물품들과 몇 달 후에 사용해도 되는 짐들을 분류하면서, 내가 이렇게도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옛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도원에 들어올 그 때, 한 평생을 무소유, 즉 ‘청빈한 삶을 살겠다’는 다짐에 또 다짐을 하던 기억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 때의 마음은 다 어디가고, 사십대 중반이 된 지금, 이렇게나 많은 물건들을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신에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런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만약에 내가 죽은 후, 형제들이 내 방을 정리하러 들어 왔을 때 어떤 말을 할까!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보면서, ‘뭐, 이딴 것 까지 여태 가지고 다녔을까! 이렇게 사느라 참 힘들었겠다’며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정 운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옛날 인도 코살라국이라는 나라에 파사익왕이 살았다. 이 왕에게는 매우 사랑하는 왕비 말리부인이 있었다. 어느 해 봄날, 따스한 햇볕 아래 앉아있던 왕은 왕비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 세상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대왕이시여! 제게는 저 이상으로 소중한 것이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왕은 왕비에게 ‘제게는 대왕이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라는 답변을 은근히 원했었다. 왕에게 있어 왕비의 대답은 의외였다. 왕은 조금 섭섭하면서도 왕비의 말에 수긍하였다. 파사익왕은 그래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석가모니 부처님께 사신을 보내어 이 이야기를 전하고 ‘그 생각이 옳은지를 여쭈어 보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사신의 말을 듣고 ‘옳은 말이다’라고 전갈을 보냈다. 다음 날 왕은 부처님이 머물고 있는 사찰로 직접 찾아갔다. 부처님께서 왕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주었다. 마음 속, 어느 곳을 찾아보아도 자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내가 이러하듯 다른 사람도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제 몸을 아끼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 남을 해쳐서는 안된다.&
누군가 널 위하여 기도하네 우주의 기본입자 6개 중 마지막 힉스입자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할 즈음 아내의 소개로 ‘왓칭’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일반인에게 너무도 생소한 양자물리학이라는 도구로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이 책을 접하면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바라보는 것(왓칭)이 우주의 원리이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변화될 수 있다는 관찰자 효과에 관한 다양한 사례와 실험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식물들이 사람의 마음을 읽어 낸다거나, ‘감사’,‘사랑’이라는 단어를 붙인 물병과 ‘증오’,‘악마’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붙인 물병의 결정체를 비교했더니 ‘감사’,‘사랑’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물의 결정체는 반짝이는 아름다운 결정체인데, ‘증오’,‘악마’라는 부정적인 딱지가 붙어있는 물의 결정체는 형태가 흐리고 기형적으로 일그러져 있다는 내용들이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도의 효과에 대한 주장은 여운이 오래 남았습니다. 교회에서 늘상 들어왔던, 했던 기도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흥미로웠습니다. 스탠퍼드 대학의 양자물리학자 틸러 박사는 ‘빈 커피 잔을 들고 진심으로 기도하면 그 잔으로 아무리 싸구려 커피를 마셔도 고급 커피 맛을 내는데, 기도하지 않은 커
사랑의 방법 날이 너무 더워, 얼마 전에 동창 신부님을 만나서 맥주를 마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40대 후반의 나이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배려…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그 신부님이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짠~ 했습니다. 그 신부님의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인데, 그 때가 초등학교 3학년, 겨울 방학이었답니다. 그 신부님은 어릴 때 방학이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던 시골에서 지냈답니다. 그런데 당시 그 동네에 서울 아이가 가면, 시골의 또래 아이들이 ‘서울 촌놈’ 왔다며 놀려대면서, 놀아주지를 않았답니다. 자신은 그들과 친구가 되어 들이며, 산이며 그렇게 뛰어 놀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럴 때 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도 좋지만, 시골 생활이 너무 싫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그 시절, 자신과 놀아주는 유일한 친구 아닌 친구가 있었는데, 그건 할머니가 마당에서 키우시던 검정개였답니다. 그 검정개만이 자신이 시골에 가면 가장 먼저 반겨주고, 놀아주고, 함께 들이며 산으로 뛰어다녀 주더랍니다. 한 마디로, 동물 이상의 절친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검정개를 사랑했던 그 신부님은
내리막길과 오르막길 늦은 오후에 동네 뒷산으로 산행을 하였다. 1시간 이상 소요되는 야산치고는 꽤 큰 산이다. 산에서 내려오는데, 앞에서 70대 초반의 할아버지와 5살 먹은 손자가 손을 잡고 내려가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먼저 손자에게 말했다. “아까 올라갈 때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안 힘들지?!” “네”“힘들 때가 있으면, 힘 안들 때도 있는 법이란다.” 평범한 말이지만 연로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해줄 수 있는 인생의 진리였다. ‘삶에 있어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이고, 힘들 때가 있으면 힘들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 아마도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에게 ‘네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도 그렇단다.’라고 해주고 싶었을 테지만, 그 말을 알아듣기에는 너무 어린 아이였다. 이들의 몇 마디 대화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불교 경전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한 장자의 집에 아리따운 아가씨가 찾아와 대문을 두드렸다. 장자가 문을 열자, 그 여인이 말했다. “나는 공덕천이라고 하는데, 당신 집안에 행복한 일과 재물을 가져다주며, 행운이 따르는 좋은 일만 가져다주는 사람입니다.” 장자는 너무 기뻐서 여인에게 ‘어서 들어오라
명상과 고통의 새로운 관계방식 박성현 교수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즐거움 혹은 고통을 동반하는 자극에 대해 두 가지의 반응양식을 갖는다고 합니다. 첫째는 회피 혹은 투쟁반응입니다. 괴로움을 일으키는 자극 혹은 괴로운 느낌으로부터 도망가거나 적극적으로 제거하려는 태도입니다. 불쾌한 감정이 일어나는 상황이나 대인관계를 피함으로써 괴로움과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원하지 않는 감정을 억제 혹은 억압함으로써 불쾌한 기분을 느끼지 않으려 합니다. 두 번째 태도는 집착반응입니다. 즐거움을 일으키는 자극 혹은 즐거운 느낌 자체를 유지하려하고, 불쾌한 기분 상태에 있을 때 즐거운 상태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회피나 투쟁반응이 때로 효과적일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일시적인 고통의 경감을 가져올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집착반응 또한 긍정적인 기분을 지속하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어렵고, 세상의 일들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오히려 지나친 집착반응은 더 큰 괴로움을 낳게 됩니다. 심리학자들은 ‘경험의 회피’가 정신병리를 가진 사람들의 공통적인 반응양식이라
사람은 어릴적 논 힘으로 살아간다지요 제가 몸담고 있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 에피소드 ① 정호(초등 2년)는 아직 한글을 몰라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정호야! 다음 주 월요일에 영화 볼 거야.” (고음으로)“몇 밤 자야 돼요?” “글자를 빨리 익혀야 자막을 읽을텐데…” (저음으로)“그림만 봐도 난 알아요.” 에피소드 ② 한 아이(초등 6년)가 잠겨진 동그란 자전거 자물쇠를 주워왔습니다. 비밀번호를 모르기 때문에 버려야 할 것 같은데도 아이는 번호 풀기를 시도했습니다. ‘0000, 0001, 0002…’ 최대 만번을 돌려봐야 알 수 있는, 무모할 것 같은 일을 수시간 낑낑거리며 했습니다. 6천8백번이 넘어간 어느 지점에서 요술같이 자물쇠가 풀렸습니다. “목사님, 이럴 것 같았으면 9천번대부터 할 걸 그랬어요.” 하며 밝게 웃었습니다. 아이들의 이런 해맑은 모습을 보며 인생살이의 소중한 의무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생명돌봄’이었습니다. 내 아이만 돌보는 일을 넘어서서 다른 아이들도 내 아이같이 돌보는 일이 인생살이의 큰 보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에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좋은 단어, 경직된 삶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예전에 ‘이번 한 달 착한 마음으로 살기’를 결심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런데는 다 이유가 있듯, 요즘 수도 생활하면서 부끄럽게도 사소하고 작은 일에 짜증을 내고, 내 방식대로 우기고, 섣부른 판단을 하여 함께 사는 형제들과 가끔 갈등을 빚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 달, 한 달 동안은 ‘착한 마음’이라는 단어를 머리와 가슴속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 달 동안은 잘 지낸 것 같았습니다. 기분 좋은 그 달, 한 달을 지내면서 내 자신이 기특하다며, 스스로를 위로, 격려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결심의 마지막 날 토요일! 그 날 오후, 급하게 교회 내 원로 학자께서 나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그 분 연구실에 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중요한 선약도 있었기에 그 날은 수도원 차량을 이용해서 빨리 다녀오기로 계획을 잡고 그 분 연구실로 운전하며 갔습니다. 그 분 연구실이 있는 건물에 도착한 뒤 차 열쇠를 주차 관리 사무소에 맡긴 다음, 뛰어 갔습니다. 그리고 반가운 인사 및 함께 차를 나눈 후, 중요한 일정을 상의 드린 다음 ‘좋은 주말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