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사회가 시작되기도 한참전인 먼 옛날, 독이 있는 열매인지 생존에 필요한 뿌리인지를
식별하기 위한 쓰라린 체험을 거듭하던 중 인간은 소량의 독이 약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질병치료의 목적으로 사용했던 수많은 약물들 중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애석하게도 대부분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그중 일부가 특정 질환에 매우 유효했다는 사실은 경이로운 일이며 이를 위해
선조들이 겪었을 숱한 고난에 외경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19세기 후반, 약리학이 과학의 한
분야로 출범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성분이 확인된 유익한 약물들이
대량으로 발견되고 화학적으로 합성되기 시작됐다.
미국의 약물 표준서인 U.S.디스펜서토리의 1937년 판에는 3090품목의 약물이 수록되어
있었으나 30년 후에는 그중 2470 품목이 무가치한 것으로 판단, 삭제되었으며 그 기간동안
약효와 성분의 검증이라는 혁신을 거쳐 880품목이 새로 추가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항생물질과 화학요법제, 면역제, 항암제, 호르몬제 등 신약이 넘쳐나는 현대와 고대의
약물요법을 답습했던 1세기쯤 전의 상황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하여, 예전에는 의료행위에 있어서 별로 믿을만한 동반자가 되지 못했던 약물학이 이제는
신뢰할 수 있는 협력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러나 약물의 남용은 뜻밖의 결과를 야기한다.
항생제의 남용은 유익한 정상균주를 파괴하고 저항성있는 유해균주를 양산할 것이며
호르몬제의 오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선천적, 유전적인 위해 뿐만 아니라 질환의 걷잡을
수 없는 전이를 촉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양한 약물의 화학성분과 생체가 상호반응, 장래에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사용자의 약물남용을 억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써의 의약분업이 신중히
고려되어 왔다.
서구에서는 이미 중세기에 의료와 약제가 분업화되어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서야
이를 도입, 금년 7월부터는 제도적으로 의약분업을 시행하도록 입법화 함으로써
치과의사들도 외부의 약국에 처방전을 발행하고 약사는 이에따라 약을 조제, 환자에게
공급해야만 한다. 그리고 처방전에 질환명을 표기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처방에 선택되는
약물의 부작용 및 상호작용, 전신질환의 유무와 이에 따른 환자의 특이성, 체질 등을 스스로
사전에 충분히 고려하여 합리적이고 적절하며 안전한 처방을 함으로써 약화사고를 방지하고
환자나 약사와의 분쟁소지를 최소화하는데 배전의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