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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세상에서 가장 뜨거웠던 2박3일
김영환(본지 집필위원·국회의원)

관리자 기자  2000.06.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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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비행장에서 평양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활주로를 미끄러지듯이 구르더니 어느새 하늘에 올라가 있었다. 뙤약볕이 쏟아지는 비행장 한 귀퉁이에 서서 손을 흔들면서 참으로 야릇한 흥분과 긴장이 엄습해옴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새로운 民族史의 장이 열리는구나. 이제 한 시간 후면 민족분단의 상처가 새겨진 古都 평양에 우리 대통령이 내리게 된다. 지금 평양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50년 동안 凍土의 땅으로 알려졌던 그곳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슴이 설레었다. 국회로 막 돌아온 나는 의사당 TV를 통해 북의 우리 동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2박3일 동안 나는 실로 충격과 감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 동안 가려졌던 우리 강토와 민족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안방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 감동은 더욱 증폭되었으리라. 북한의 지도부와 평양시민이 보여준 따뜻한 환영 또한 그 동안 언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하였다. 남북합의서의 서명으로 나타난 이번 정상회담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획기적인 일이었다. 어찌보면 지난 분단의 반세기만에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기쁨과 희망을 가져다 준 快擧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선, 나는 무엇보다 이번 일이 남과 북의 구성원에게 민족의 긍지와 自尊을 일깨워 주었다고 확신한다. 우리의 운명을 우리의 손으로 개척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명제를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일이 이토록 지난한 일이었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둘째로, 우리는 이번 일을 통하여 꼭 통일을 해야 하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셋째로, 우리는 이제 화해와 협력의 길, 남과 북이 평화를 이룩하고 교류하는 길에 들어섰다. 그것이야말로 낮은 차원의 통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는 이미 통일은 남과 북의 민족구성원 내부에서 시작되었다고 확신한다. 나는 다시 성남공항으로 대통령과 수행원이 탄 비행기를 맞이하러 달려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대통령 전용기가 너무 낡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전용기는 너무나 눈부셔 보였다. 나는 새롭게 열리기 시작한 민족화해와 공영의 이 길을 열어 나가는 일을 조심스럽게 지금부터 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는 과거 우리에게 새겨진 수많은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며, 우리 사회의 다양한 견해를 아우르는 인내와 노력의 과정일 것이다. 남북화해와 통일을 위해 민족의 역사 앞에 떳떳한 정치인이 될 수 있기를 다짐해본다. 저녁햇살이 서울공항을 빠져 나와 연도에 늘어선 환영인파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