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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산가족 방북에 즈음하여
강대인

관리자 기자  2000.07.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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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정권에 의해 박해받던 유태인들은 생존을 위하여 국외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겨났다. 그들을 다이아스포라(Diaspora)라고 부른다. 나치 정권이 무너진 후에는 다시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이데올로기적 냉전이 시작되어 흩어졌던 가족들을 찾는 일이 어려웠었다.  정치적 이유로 가족상봉을 못하는 다이아스포라들의 이산의 아픔은 인권문제로 세상사람들에게 다가 왔었다. 미국과 소련간의 정치적 해결로 냉전이 풀리면서 다이아스포라들의 가족상봉이 이뤄지게 되었다.  20세기 한반도 역시 이산의 아픈 역사가 시작되었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수많은 동포들이 가족과 생이별을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또 그 후에도 이념의 갈등으로 인한 동족 상잔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이 골육상잔의 전쟁으로 1천만명의 동포들이 이산가족으로 남아야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산가족의 현황을 살펴보자.  현재 한국에 생존해 있는 이들 이산가족의 숫자는 평안남북도 출신이 277만 명, 함경남북도 252만 명, 황해도 191만 명, 경기도 31만 명, 강원도 14만 명으로 총 760여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에서 특히 이산 1세대로 60세 이상인 사람들만 보더라도 60~69세가 41만 명, 70~79세가 19만 명, 그리고 80세 이상의 고령이 6 만 여명으로 총 66만에 이른다.  인도주의적 면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들의 인권적 차원에서도 우리가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이산가족들은 남북간의 이념대립 속에서 부부간, 부모와 자식 혹은 형제들 간에 생사 확인조차도 하지 못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행복추구권마저 갖지 못하고 살아왔다. 남북간의 정치적 원인으로 가족들과 격리되어 살아 온 것이다.  필자는 몇 해 전 남가주대학에서 한인 이산 가족의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상당수의 이산 가족들이 이념이 다른 곳에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국제사회에서 인권문제를 보통 두 가지의 시각에서 논한다. 시민적, 정치적인 시각의 보편적 인권과 사회, 경제,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는 상대주의적인 인권이 그것이다.  이산가족 문제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의 차이를 극복해야 할 사안이다. 이산가족들의 인권은 그 동안 남북간의 정치적인 대립으로 인해서 오랫동안 소외되고 유린되어 왔다.  이는 이산가족 문제해결에 책임을 가지고 나라를 움직여 왔던 지도자들 모두가 부인할 수 없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다행히 한국의 민주주의 정착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6월 15일 남북 정상회담 성공과 이에 따른 후속조치로 이산가족들의 문제가 풀리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곧 남녘 이산가족들이 평양으로 가고 또 북녘에서 서울로 방문하리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산가족들은 오랫동안 서로 다른 세상에서 다른 방식의 생활과 생각을 갖고 살아왔다. 이산 이후에 태어난 그들의 자식들은 더욱 다른 생각과 방식의 세상에서 자라 왔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사회적, 경제적, 지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만남이다.  차이를 표현하면 차별이 된다.  하찮은 우월감이나 제 가족만을 위한 표현은 서로를 오해의 길로 가게 할 수 있다. 언어조차 서로 통하지 않은 다이아스포라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되기 위하여 쉬지 않고 민족문화를 통한 노력을 하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더욱이 수십 수백만의 이산가족들이 혈육을 만날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화해와 협력 그리고 통일로 가는 평양선언의 후속 첫 사업자로 선정된 고령 이산가족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건강과 행복한 만남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