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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하게 공부하고 당당히 승부한다’
오성욱 원장 아들 성공유학기 ‘화제’

관리자 기자  2001.03.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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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류하는 아버지 설득 미국 유학가 우등생 우뚝 오진우 군 한국의 교육엔 ‘학생"이 없다. 최근 신문·TV 등의 언론매체에서는 연일 우리나라의 암담한 교육현실을 비판하는 내용들로 떠들썩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부모 88%와 교육전문가 93%가 우리의 교육 현실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는 얼마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에서 열린 해외 이민·유학 박람회에 4만5000여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으며 이날 박람회에 참가한 상당수의 사람들이 우리나라 교육현실에 자녀를 맡길 수 없어 해외로 떠날 채비를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심각성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지난해 3, 4월 두 달 동안만 초·중·고생 유학생도 2874명에 이르렀다. 문제는 유학을 떠나는 이들 모두가 유학생활에 있어 만족할 만큼의 성과를 얻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교육현실에 밀려 낯선 이국 땅으로 향했으나 그곳에서 또다시 방황해야만 하는 우리 아이들..., 한국의 교육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국교육현실 답답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얼마전 치과의사가족의 성공적인 유학기가 발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 ‘나는 겸손하게 공부하고 당당하게 승부한다." 에이플러스치과병원 오성욱 원장의 장남인 오진우군이 바로 이 화제의 주인공이다. 오 군은 오 원장이 미국 유학 시 유년기를 미국에서 보내면서 미국생활에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간 경우다. 그러다 오 원장이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다시 돌아와 살면서 오 군은 또 다시 한국에서의 생활도 적응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미국식 교육방식에 너무나 익숙해진 오 군에게 한국의 주입식 교육은 너무나 힘겨웠다. “미국에 있을 때는 진우에게 학교에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 벌이라고 여겨질 만큼 학교생활을 즐거워했었는데, 한국에 와서는 너무나 힘들어 했어요”라며 오원장은 한숨을 내쉰다. 그렇다고 오 원장이 이런 아들의 모습이 안타까워서 혹은 아들을 좀더 유능하게 키우고 싶어서 유학을 권유하거나 한 것은 절대 아니다. 책에서도 밝혔듯이 오 원장은 아들에게 “공부에 집착하지 마라. 아버지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를 원한다. 네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도 많고, 뛰면서 할 수 있는 운동도 많다. 인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학창 시절을 행복하게 보내라. 나는 공부 잘 하는 아들보다 행복한 아들을 원한다"고 언제나 당부했다. 14살 어린나이에 결심 14살 어린 나이에 유학을 선택한 것도 전적으로 오 군 자신의 의지였고 자신의 인생에 있어 수많은 특기 중 공부하는 것을 주특기로 살린 것도 오 군 자신이다 오 원장은 6·25를 겪은 자신 아버지세대에는 공부 못한 것이 한이 되는 세대,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성공을 할 수 있는 세대였기 때문에 자신은 아버지로부터 공부를 많이 강요당하며 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세대가 많이 변해 어떠한 한 분야에 특기를 키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이 얼마든지 있다”며 “인생의 2/3이상을 공부를 하면서 지내야 하는데 이를 즐길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이 시간들을 자신이 정말 즐거운 일을 하기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오원장은 말한다. 인권변호사 꿈 오 원장은 또 “내가 입시위주의 교육을 받은 세대였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 세대에는 좀더 나은 교육환경이 되리라 기대했는데 오히려 교육환경이 더 나빠지고 있는 것 같다"며 “여기에는 교육부의 책임도 크지만 아이들이 진로결정에 있어 바른 길을 제시해 주지 못하는 부모들의 책임도 크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앞서 밝혔듯이 오 군의 경우는 수많은 특기들 중 공부를 자신의 재능으로 선택했을 뿐이며 유학 또한 그 누구의 강요가 아닌 자신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현재 오 군은 카디간 마운트 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명문 고등학교로 알려진 세인트 폴 스쿨에서도 상위권을 유지, 현재 아이비리그 진학을 목표로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 앞으로 인권변호사가 되겠다는 꿈도 이미 정해 놓은 상태다. 수 년째 여름휴가 때면 소록도 나환자촌으로 봉사를 다니는 아버지 밑에서 배우고 자란 영향도 오 군이 진로를 선택하는데 한 몫을 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