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 요구하는 풍토에 넌더리
잘못된 사회 바로 잡겠다 결심
하루 14시간 책과 씨름 “구슬땀”
의술도 법도 아는 인재 되고파
서울 000구에서 2년 전에 개원하고 병원운영은 일단 접은 채 2년째 사법고시공부를 하고 있는 A원장.
A원장은 살을 깎는 아픔에 비견될 정도로 많은 인내와 고통을 요구하는 사법고시에 도전하게 된 이유를 털어놓았다.
“페이닥터 생활을 2년여 하고서 개원을 하게 됐습니다. 개원을 하니까 힘든 점이 하나, 둘이 아니었는데, 그 중 가장 황당했던 일 중 하나가 개원지역이 상업지구에 있어서 그랬는지 경찰, 구청, 보건소, 소방서 등에서 말단 공무원들이 촌지를 요구하는 것을 보고 참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선배의 충고대로 보건소 직원에게 5만원을 주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는 명절 때나 경조사 때마다 주기적으로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A원장은 그때 처음으로 사람들의 아프고 썩은 부분을 고쳐주는 치과의사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무리 적더라도, 분명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또 학교 때 자기보다 성적이 낮았던 친구들이 법대에 들어가 사법시험을 통과해 판·검사로 지내는 것을 보면서 약간은 치기 어린 생각으로 ‘각 과목당 문제집이 있고 기본서가 있는데 거기서 시험 문제 나오는 만큼, 전혀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개원의로서 다시 공부하기는 쉽지 않았다.
고시에 패스하려면 형법, 민법 등 7개의 관련법에 관계된 7000개 정도의 예상문제를 달달 외워야 가능하다고 한다. 이렇게 해야 육법전서를 꿰뚫게 되고 고시합격이 보장되는 것이다.
이미 신림동 고시촌에서 2년째 생활하고 있는 A원장의 하루는 아침 6시30분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간단한 세면을 하고 헬스클럽으로 향한 시간은 오전 8시.
결국 고시는 체력과 의지의 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아무리 귀찮고 피곤해도 운동만큼은 거르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체력단련 후 아침식사가 끝나면 오전 9시 영어 공부를 시작한다. 법 관련 과목은 몰라도 영어는 자신이 있다. 늘 공부를 했었고 최근에 미국에도 반년 정도 나가 있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자다. 치대를 나와서 한자에는 많이 약한데다 법 교과서에도 요즘은 다소 줄었지만 그래도 거의 모든 글이 한자위주로 돼있어‘의의’를 쓰는데 ‘의의(意義)’인지 ‘의의(義意)’인지부터 헷갈린다.
아침 식사가 다 소화되기도 전에 고시원을 나와 인근 독서실로 향한 시간이 오전 10시. 주위 수험생들과 은연중에 경쟁이 되기 때문에 혼자 공부하는 시간보단 효율성이 높다. 오전에는 테이프를 들으며 헌법과 형법을 공부한다. 지난 고시때만 해도 10월이 돼서야 1차 공부를 시작했지만 올해는 지난해 6∼7월부터 1차시험에 대한 준비를 서둘렀다.
낮 시간에는 정신집중이 어렵다.
고시생 중에는 밀려오는 졸음과 권태를 피해 인근 PC게임방으로 달려가서 스타크래프트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A원장은 쓴 인내를 감내하며 오후 6시까지 형법에 매달렸다.
오후 6시30분 저녁식사를 마치고 학원 강의를 들으러 간다. 수험생들과 강사가 내뿜는 열기로 후끈거리는 강의실. 듣다보면 다 아는 내용인 것 같다. 딴 생각에 빠져들지 않으려 계속 끄적 거린다.
밤 10시 30분, 강의가 끝나고 우르르 몰려나오는 수백명의 인파 속에서 나온다.
저녁을 먹었지만 출출하다. 분식점에서 라면 한 그릇을 먹으려다 최근에 고시촌에 들어왔다던 고등학교 동기와 마주친다.
“치과의사가 더 나은 생활 아니냐, 고생을 사서해도 분수껏 해” 농담 비슷한 얘기를 안주삼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힘들었던 오늘 하루를 되새겨 본다.
A원장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평균 새벽 1시30분. 하루 5시간 수면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지만 법도 알고 의술도 아는 인재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개원해서 자리 잡아가는 치대 동창들을 볼 때마다 불안감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고시합격보장이란 말은 없으니까요. 가능성을 보고 제 인생을 걸고 있습니다”
<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