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는 과거의 일들을 담아두었다가 추억을 찾아주는 그릇이기도 하고, 사진은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말해주는 그림이기도 하지."
김 원장과 함께 했던 한두 시간 남짓의 시간. 마치 친할아버지에게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한 편안한 느낌이었다. 이제 막 고희를 맞은 역삼동 김광현치과 원장. (굳이 나이를 밝히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조금 역정을 내실지도 모르겠다.)
김 원장은 지난 1일 있었던 사진집 발간 기념회 때도 축하 화환에 붙어있었던 리본에서 ‘고희를 맞아..." 라고 쓰여진 부분들만 싹둑 잘라냈다. 남들에게 굳이 자신의 나이를 알리고 싶지 않단 이유로...
하긴 리본 쓰여진 고희라는 글자를 보지 않는 이상에야 누가 김 원장을 제 나이로 보겠는가. 김 원장은 고희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너무나 젊었다.
김 원장에게 젊음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묻자 서슴없이 “꽃을 가까이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 원장의 꽃과 함께 해 온 사진 인생 20년은 16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던 지난 1일 ‘화보집 발간기념회"를 비롯해 지난 94년 1월 자신의 치과의원을 신축하면서 열었던 ‘꽃 사진전", 같은 해 9월 일본에서 가졌던 ‘flower days"사진발표회 등 화려한 이력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70, 80년대 가톨릭대 교수로 교직에 몸담고 있던 시절 슬라이드 강연의 지루함을 덜어주기 위해 슬라이드 수업 중간 중간에 꽃 사진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시작한 꽃 사진 활동이 지금에까지 이르게 됐다는 김 원장. 병원 입구에서부터 엘리베이터, 대기실, 진료실 곳곳에 걸려있는 액자며 꽃들이 “나는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요"라고 대신 말해주는 듯하다.
꽃 중에 특히 야생화를 좋아한다는 김 원장은 주말이면 그가 동반자라고 부르는 부인과 깊은 산중으로 야생화를 찾아 여행길에 나선다.
산에서의 에피소드를 묻자 박 원장 왈 “음.. 에피소드라. 글쎄. 예쁜 야생화를 발견하고 근접 사진을 찍으러 꽃에 아주 가까이 다가갔다가 낮잠 자던 뱀을 보고 내가 화들짝 놀라고, 뱀도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지..." 소실적 문학소년을 꿈꾸기도 했다던 그다운 표현이다.
그뿐인가 야생화를 찍으러 산으로 갈 때 나름대로는 운동화에 츄리닝 차림의 편안한 복장으로... 또 이슬이 맺혀있는 듯한 좀더 좋은 사진을 연출하기 위해 물이 든 스프레이를 들고 다녀. 그를 간혹 파리약 뿌리는 아저씨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고... 커다란 카메라 장비 가방에 허름한 차림 덕(?)에 간첩으로 오해받은 적도 있었단다.
그래도 박 원장은 마냥 신나고 좋은가 보다, 꽃을 만나러 가는 길이...
“언젠가 강원도 깊고 깊은 산골로 야생화를 찍으러 갔었는데 그곳에선 숨을 쉬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웠었어요.” 이 맑은 공기, 청렴한 자연이 나 때문에 오염될 까봐"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자연에 대한 애착이 느껴진다.
이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 정성을 다해 찍은 사진들은 매해 크리스마스때가 되면 그의 환자들, 친구들,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로 만들어져 국, 내외로 전해진다.이젠 그맘때가 되면 그의 크리스마스카드를 애타게 기다리는 펜들이 생길 정도.
그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렸을 적 친할아버지에게서 느끼곤 했던 그 편안함, 사람을 즐겁게 해주던 마력 같은 힘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좀더 해달라고 졸라댔다. 그러자 어린 손주에게 쌈짓 돈 꺼내주듯이 ‘봉숭아 꽃" 얘기를 꺼내준다.
“8월경 손톱에 스며든 봉숭아물이 첫눈이 내릴 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얘기가 있어, 우리나라의 여인들이 초여름 봉숭아꽃이 필 무렵이면 그 꽃잎을 찧어서 정성스럽게 손톱에 물을 들이고선, 첫눈이 내릴 때까지 봉숭아물이 든 손톱을 아끼고 아껴가며 조심스럽게 자르곤 했었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김 원장은 이 얘기를 94년도에 일본에서 열었던 ‘flower days"사진발표회 때 그곳에 모인 일본인들에게 해주었더란다. 그랬더니 이 말을 들은 한 일본여성이 “한국 여성들이 마음이 너무 아름답다"는 감탄을 하더라고 얘기해 준다.
언제까지나 꽃 사진을 계속 찍겠다는 그. 그는 꽃 사진만을 찍는 것이 아니라 꽃사진을 통해 한국의 아름다움도 함께 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