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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영자 아버지의 죽음
최영욱(본지 집필위원)

관리자 기자  2001.04.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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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초순경 잘 보지 않던 TV를 켰다가 며칠간 지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나보다도 더 산골에서 사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조금만 더 보고 가야지 하다가 늦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어린 시절과 산골 영자의 생활을 연상시키면서 왠지 비슷한 생활이 마음에 들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절로 머금어졌다. 지금 이 시대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에서 화전과 약초캐기로 살아가고 있는 부녀의 모습은 순수함에 앞서 가슴이 찡하였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잡던 어린 시절∼"이런 노랫말 가사와 같은 외딴 집에서 사는 부녀가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화면, 도시 사람들의 근심과 걱정을 충분히 떨쳐 버릴 수 있는 청량제와도 같은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왠지 뒤끝이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방송국의 연출자가 어떻게 알고 섭외를 해서 이 세상 밖의 사람들에게 알리게 되었으며 설마 산골부녀가 애걸복걸 사정하여 TV에 출연시켜 달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또박또박 자신의 시를 읽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 세상 밖으로 노출시킬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산 속에서 숨어살게 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상품가치를 노리던 광고업자는 싼 출연료로 그들 부녀를 꼬셔 불행의 싹을 키우고 있는 셈이었으며 도시로 나간 영자는 주인 어르신에게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19년이나 산골에서 살던 부녀를… 아, 너무도 험악한 이 풍진세상, 비극이 부녀에게 유명세를 치룬다고 하기엔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출연료를 훔치기 위해 혼자 살고 있던 영자의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였던 것이다. 그것도 12만원을 훔치기 위해 생명을 저버렸으니 산골소녀 영자가 과연 어떤 문학적 장르로 글을 발표할지 매우 궁금하다. 각박한 이 세상을 어떻고 보고 어떻게 정리를 할까? 유명세치고는 너무 혹독한 대가가 아닌지? TV와 잡지에 얼굴이 알려져 결국은 아버지의 죽음을 맞바꾸었으니 얼마나 억울할까? 결국 한번도 돈을 탐내지 않고 알리고 싶지도 않은 산골부녀의 생활을 세속에 대한 욕심도 없고 사람들에게서 간섭받기를 거부했고 그래서 산중에 오두막을 짓고 딸 하나만을 키우며 살았던 아버지에게 닥쳤던 재앙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TV에서 부녀의 사는 모습이 방송되지 않았다면 영자 아버지의 순수함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광고만 찍지 않았다면 그들 부녀가 이렇게 일찍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또 더 화가 나게 하는 것은 후원회장이라는 어르신이 출연료의 돈을 갈취했다는 것이다. 다음의 피고인들에게 죄값을 치루도록 엄벌에 처하고 싶다. 1. 방송으로 끌어낸 연출자 및 작가 - 15년형 2. 안 찍겠다는 광고를 굳이 설득해 출연시킨 업자 - 10년형 3. 영자를 꾀어 서울로 불러들여 돈을 갈취한 어르신 - 5년형 4. 산골 부녀의 순수함을 보며 자신을 정화시키려던 나 같은 시청자 - 1년형 모두가 영자 아버지의 죽음으로 내몬 공범들을 중형에 처했으면 한다. 세상과 만나지 않았다면 19년이나 산골에서 지금도 해맑은 모습으로 살고있을 이들 부녀의 이야기는 결국 전설속의 이야기로 막을 내렸다. 오늘도 결국 우리의 문명은 아름다운 전설하나를 삼키게 되었다. 영자 아버지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