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락프로그램, 최면술로 어느 인기가수의 전생을 알아보는 실험이 한창이다. 최면에 걸린 그 가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수 십명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으며 지금 혼자서 그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중이라며 자기 이름이 글쎄 황비홍이란다. 최면에서 깨어난 후 평소에 틈만 나면 무술영화를 본다며 그는 겸연쩍어 했다.
뉴스 시간, 평소 컴퓨터 폭력게임에 몰두하던 한 중학생이 자기 동생을 잔인하게 살해하고서 그냥 한번 사람을 죽여보고 싶었노라고 무감각하게 말했다.
오늘날 삶은 점점 더 미디어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실제 상황보다 더욱 실제 같은 미디어 속의 상황, 실제의 삶 보다 더욱 실제 같은 미디어 속의 삶, 그 결과 실제의 삶과 미디어가 재현하는 삶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고 개인의 무의식까지도 미디어에 의해 통제되는 상황이 되었다.
사회학자 보드리야르는 이를 두고 하이퍼 리얼리티의 도래라고 했다. 우리가 리얼리티라고 믿고 있거나 느끼고 있는 사회현실이 미디어가 빚어낸 이미지에 의해 형성된 모사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파트는 대단히 사적인 공간이지만 그 사적 공간 조차 매스미디어에 의해 지배된다. 그 공간에서 가족간의 교감의 시간은 점점 줄어 들고 컴퓨터 게임, 텔레비전에 얼을 빼앗긴 채 소중한 저녁시간과 주말의 여가를 흘려 보내고 있다.
여가생활은 노동의 부정이나 일회적 소비가 아니라 노동을 위한 재창조활동(re-creation)이며 문화활동이다. 그렇다면 여가를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의 인생관 또는 가치관과 관련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영화와 대중음악으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주류 문화가 대중을 사로잡는 것은 그들 대부분이 섹스와 폭력, 관능과 자극을 직·간접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지배적 대중문화에 과연 우리의 내면을 흔드는 떨림과 긴장, 우리를 성숙케 하는 감동의 메시지가 얼마만큼이나 있을까?
컴퓨터와 인터넷을 두고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오지만 금을 넣으면 금이 나온다 (Garbage In Garbage Out, Gold In Gold Out)고 누군가 한 말이 기억 난다. 어찌 컴퓨터와 인터넷에 국한된 말이겠는가. 대중문화 역시 우리가 책임 있고 미래지향적 의식으로 가꾸어 나간다면 이는 우리 삶을 살찌우고 활력을 주는 에너지의 저장고, 일상적 행복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모습대로라면 예의 중학생과 같은 살인마는 앞으로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또한 황비홍이 된 어느 가수처럼 홍수같이 쏟아지는 매스미디어의 이미지에 자신의 뿌리마저 뽑인 채 개인의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말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보드리야르의 진단을 경고로 받아 들여야 한다. 자신과 우리의 2세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