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계속 장기근속 직원 나오길”
30년간 한 직장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달 21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제50차 치협 정기대의원총회에서 30년 근속상을 받은 崔東哲(최동철) 치협 사무처 기획관리실장.
치협 발전사의 산 증인으로서 30년 세월 치협과 함께 울고 웃어 왔던 崔실장은 완전한 ‘치협맨’ 이었다.
崔실장이 치협에 입사한 것은 지난 71년 3월 서영규 협회장 2기 집행부 당시였다.
崔실장 나이 28세 때로 잘 다니던 철강회사가 어느날 팔리면서 치협과 인연을 맺게 됐다.
당시 치협회관은 낙원동의 일본식 2층 목조건물. 2층은 사무실로 개조해 사용하고 1층은 세를 줬던 시절이었다.
“입사초기 치과의사수가 1천6백여명 정도 였습니다. 사무처 직원은 치협직원이 3명이었고,서울지부 역시 3명이 근무하고 있었지요.”
崔실장 입사초기엔 협회비가 잘 거치지 않아 협회장이 사비로 일단 봉급을 주고 회비가 들어오면 협회장에게 갚는 식이었다. 그만큼 치협 살림살이가 어려웠던 때였다.
치협 30년 근무 중 崔 실장에겐 잊혀지지 않는 에피소드가 있다.
“확실치는 않지만 73년도로 기억됩니다. 전국에 금 파동이 몰아닥쳤지요. 금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당시 치협에서는 금 제련협회 공개 입찰을 통해 금 10kg을 확보, 필요한 치협 회원에게 나누어 준 적이 있습니다.”
崔실장은 당시 확보한 금괴를 한돈 씩 짤라 포장하는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회관주변 철공소에 금 자르는 일을 부탁하고 다음날 기분 좋게 출근한 崔실장.
총무이사로부터 깜짝 놀랄만한 뉴스를 들었다. 아침라디오 뉴스에서 모 철공소에 금 10kg을 짜르는 일을 맡기고 도주한 키 작은 사람이 있는데 경찰은 그를 밀수꾼이나 북한 공작원으로 판단, 전국에 지명 수배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崔실장이 경찰에 자진 출두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치협의 최대 현안은 전문의 였습니다. 끝없는 논쟁을 펼쳤지요.”
“오응서 박사가 서울지부 회장으로 재임 때 국민소득 1천불 시대가 오면 하자던 전문의 제도가 아직까지 정착되지 못했습니다.”
崔실장은 지난해 49차와 이번 50차 정기대의원 총회에서 전문의에 대한 치협안이 도출되는 것을 보고 가슴 뿌듯했다고 했다.
이젠 치협 회무 수준이 자랑할 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입사초창기 봉급이 적어 살기가 빠듯했다”는 崔실장. 지금은 어느 정도 현실화돼 후배들이 긍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崔실장은 또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면서 치협이 급성장 했고 치과계 숙원이던 구강전담부서 부활 등 치협 현안이 최근들어 술술 풀리고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고.
“이젠 치협에도 유능한 직원이 많이 확보돼 있습니다. 앞으로 치협이 더욱 발전하는데 촉매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30년∼ 40년 근속하는 직원들이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30년 근속 축하연 까지 마련해준 이기택 협회장님을 비롯한 현 집행부 임원들에 감사드립니다.”
<박동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