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는?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한국전 당시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의 대표적인 곳이다. 왠만한 초등학생까지도 다 알겠지.
그러면 푹빈은? 글쎄,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곳을 알 것이다. 푹빈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양민학살 지역의 하나라고 말해지고 있다. 물론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없다. 베트남 정부도 과거는 덮고 미래로 나가자고 하면서 공식적인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
두 달전 `화해와 평화를 위한 베트남 진료단"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베트남 중부 선틴현 의료센터에서 진료를 하였다. 필자도 그 중 한 사람으로서 참가하였다.
치과의사, 위생사와 현지 통역학생들을 포함하여 약 80명에 이르는 진료단은 구개파열 환자의 수술을 포함하여 2800명에 가까운 환자를 진료하였다. 그러면서 그 일대에 산재되어 있는,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 의한 양민학살이 일어났던 지역이라고 한겨레21에 보도된 바 있는 마을들을 답사하였다.
푹빈, 지엔니엔, 하타이, 하미! 가는 곳 마다 전쟁의 상처는 깊었으며 한국군에 의한 양민학살의 흔적은 분명해 보였다.
마을 어귀에 세워져 있는 위령비에는 몇년 몇월 몇일 한국군에 의해 몇십명의 양민이 학살되었다 하는 내력과 함께 그 날의 희생자 명단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대부분이 노인, 여자 그리고 어린이들 더구나 한 살 배기 아기의 이름들까지 그 무더운 아열대의 돌 위에 각인된 채 그 날의 비극을 증언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이중의 잣대를 가지고 사는 경우가 많다. 노근리에 우리가 흥분하는 것은 피해자들이 우리의 동족이어서만이 아니고 전투와 무관한 양민들이었다는 점이 아닌가.
그러면 만약 베트남전에서 우리 국군에 의한 양민학살이 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나?
일부 사람들의 의견대로 먼저 그 쪽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데 나서서 그럴 필요는 없다, 또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그런 일들은 일어날 수 있으며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지나간 과거의 일을 들추어 우리나라의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말대로 과거를 덮고 미래로 나아가야 될까?
그렇다면 우리도 노근리를 비롯한 이 땅에 저질러진 무수한 유사 노근리도, 또한 일제 강점하에 벌어진 야만적인 정신대 문제도,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의 문제도 다 덮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닐까?
올바른 과거의 청산 없이 밝은 미래란 없다. 그것은 멀리 보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들여다 보면 자명하다. 일제잔재가 청산되지 않고 친일파들을 단죄하지 않고 군부쿠테타 세력들을 인정한 우리의 역사가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는 것이다.
뜨거운 햇살이 소나기로 퍼붓는 베트남의 한 시골 동네 푹빈에서 우리의 조국 노근리를 생각하며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