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시험제가 드디어 가시화될 전망이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예비시험제가 포함된 의료법개정안을 지난 20일 발의한 것이다. 이 법안이 발의될 때까지 치협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치협이 타의료 단체에 앞서 직접 예비시험제를 들고 나온 것은 필리핀 등 일부 한정된 외국에서의 유학생 유입사태 때문이었다. 86년도부터 1∼2명씩 몰려들던 유학생들은 90년도에 들어오면서 봇물 터지듯 2∼300명이 넘게 유입됐다. 올해 국시까지 약 600여명이 훨씬 넘는 인원이 응시해 온 것을 보더라도 이미 상식 선을 넘은지 오래였다.
사실 이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했던 사항이었다. 그러나 국가는 전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치협이 직접 발벗고 나선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의료인에 대한 인력관리는 국가적 차원에서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결정하는 것이 정석이다. 인력배출 기간이 수년 걸리는 관계로 대학설립을 허가할 때나 입학정원을 증감하는 것은 십수년 앞을 보고 결정해야 한다. 그러한 인력관리에 구멍이 생겼다면 관련 단체에서 나서기 전에 국가가 나서야 했는데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치협은 90년대 들어서면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이 때부터 예비시험제 도입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난데없는 국가간의 호혜주의 원칙 등을 내세우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치협의 압력에 못이겨 97년도부터 적용된 규정을 만드는데 그쳤다. 그것이 바로 유학한 나라 면허를 취득해야 국내 국시를 볼 수 있다는 조항이다. 이 조항은 사실 필리핀 등 특정 국가의 법에 맞추어 개정한 것이다. 필리핀의 법에 따르면 외국인은 그 나라 자격을 취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1∼2년 후 필리핀은 그 조항을 개정하여 필리핀에서 개업하지 않는 조건으로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함으로써 우리나라 법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 법이 개정되자 필리핀보다 훨씬 더 유학가기 편한 볼리비아 등의 국가까지 유학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쯤 되다보니 예비시험제를 도입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공고해졌다. 치협은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김모임 전 복지부 장관 등으로부터 김원길 장관까지 장관이 바뀔 때 마다 도입 필요성을 역설해 왔지만 결정적으로 李起澤(이기택) 협회장이 국시원 이사장으로 선출되면서 구체화시킬 수 있었다. 李 협회장은 이사장이 된 후 더욱 박차를 가해 정부기관에 연구용역을 주어 도입이 바람직하다는 결론까지 얻어낸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도 복지부는 별다른 후속조치를 보이지 않았다. 이에 치협 집행부가 다시 결연한 의지로 김 장관을 만나는 등 수없는 노력으로 결국 이번 법 개정안에 포함시키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항상 앞서가는 자만이 이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법이다. 치협의 이러한 행보는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국내 의료질서를 바로 잡는다는 면에서 매우 의의가 크다. 관료주의의 병폐인 무사안일주의를 헤쳐가며 이룬 성과여서 특히나 자랑스럽다. 이로써 치과계는 보건의료계를 이끄는 영향력 있는 단체로 거듭나고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