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이 말을 믿는다. 그리하여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름을 날리면 인기를 얻고 인기를 얻으면 명성을 누리고 명성은 또 돈을 안겨준다고 믿는다.
이 또한 현대인에게 있어서 신앙처럼 된 것 같다. 지금은 영웅이 없는 시대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너도나도 영웅심리에 도취되어있는 상태가 아닌가 싶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는 것은 그 털 때문이지 가죽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호랑이 가죽에 붙은 털을 밀어버리면 그것은 개가죽이나 다를 바 없는 것 아닌가?
사람이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은 이제 멀리만 간 것 같다. 제 욕심만 앞세우던 사람도 하나의 밥통에 들어간 두 마리 개의 입처럼 되고 말것이다. 현대인들은 지금 그런 지경에서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를 타고 서로 으르렁거리는 중이다. 이쯤 되었으면 아무리 휴머니즘을 떠들어댄들 그것은 빈말일 뿐 사람됨을 잃어버린 것이나 같다.
덫에 걸려든 짐승이 세 걸음만 뒤로 물러날 줄 알면 살아남는다는 속언은 차라리 인간사회에 얘기해야 될 고함이지 않을까 싶다. 덫줄 올가미에 걸려든 멧돼지는 풀려나려고 한사코 전진만 하는 통에 덫은 더더욱 조여들게 되어 제 목숨을 스스로 끊는 어리석음을 범하는지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는 욕망이라는 덫줄에 목을 걸고 앞으로 앞으로만 돌진하려고 든다. 그래서 인간의 숨통은 하루가 다르게 막혀 가는 중이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성폭행하는 어른들, 남의 아이들을 훔쳐다가 팔아 넘기고 생선회 칼로 사람을 죽이는 막가파 일당들, 공연히 남의 차를 발로 차고 불질러 태워버리는 사람들, 급행료를 주지 않으면 민원서류가 돌아가지 않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자기편의주의가 팽배해있다.
이 모든 꼴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덫이 놓아둔 함정이지 않을까? 이제 우리들은 이런 함정에 빠져들면서도 부끄러워할 줄조차 모른다는 데에 있다.
사람값은 욕망의 확대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수축에서 올라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너의 마음에 인(仁)이나 덕(德)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했거늘 모두들 이롭게 하는 덕을 잃었고 나보다 남을 사랑하라는 인을 팽개친 채 욕망만을 품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
지나친 것은 언제나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더욱이 지나친 음식이 몸을 상하게 하는 것처럼 지나친 욕심은 마음을 썩게 한다. 그래서 절제하라고 했건만 이제는 아무도 이런 말을 따르려 하지 않는데 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휴머니즘의 시대는 가고 물질의 풍요함으로만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물질의 화신으로 변해 사람 사는 사회가 아닌 물질이 사는 사회로 바뀌어버린 것 같다.
이제까지 우리들의 주변에 쏟아진 그 값진 말, 그 절실한 요구와 약속이 다 하나같이 이루어지기를 빌 뿐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좀 더 밝아지고 좀 더 사람답게 사는 사회로 되는 날이 하루속히 다가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또 한번 잃은 것과 얻은 것을 저울질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