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설날이나 추석이 오면 차례를 지내고 성묘도 가게 됩니다.
그러나 고향으로 가고자 하는 많은 귀성객들이 겪는 많은 어려움 때문에 많은 대안들이 제안되고 있습니다. 모두 옳은 말들이지만, 근본은 지켜 나가면서 세월의 흐름에 적응해 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우린 그동안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발전된 물질문명에 눈이 가리워져, 선진물질문화가 선진정신문화라는 착각 위에서 갑작스레 서구의 것으로 바꿔온 것이 사실입니다. 근본 자체를 바꾸니 사회는 다변화 되는 것이 아니라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간 우리자신을 찾자는 민족적 각성에 힘입어, 각종 전통문화가 복원 장려되고 있으나, 의외로 우리 생활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집안의 각종예절을 비롯한 관혼상제의 예절들이 나타내는 우리 전통의 생활습관은 고리타분한 구습이라는 오명을 쓰고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예절에 어둡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반면 서구의 예절에 밝은 것만이 세계화의 조건으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돼지머리에 절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후배가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우상과 조상을 구분 못하는 그를 탓하기에 앞서 제사의 상차림에 돼지머리를 올리는 줄 아는 그의 인식에 먼저 놀랐습니다. 제사의 상차림에는 돼지머리를 올리지도 않으며, 음식이나 망령된 귀신에게 절을 하며 행운을 비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있게 해준 돌아가신 부모님과 할아버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절을 하는 것입니다.
제사의 상차림이나 절차에는 우리 조상들이 남겨 놓은 각종 전통문화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선 상차림은 북쪽이 기준이어서 동쪽이 오른편이 됩니다.
홍동백서는 붉은 것을 좋게 생각하던 풍습에 따라 붉은 것으로 상징되던 사과를 동쪽에 놓는 것이며, 조율이시의 과일순서는 당시의 관료제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익히지 않은 음식을 익힌 음식보다 우선시하며(생동숙서) 조상님도 혼령이라는 생각에 닭처럼 새벽을 알리는 음식은 올리지 않는 조상에 대한 배려가 있기도 합니다.
설날이나 추석에 지내는 차례의 상차림은 제사 때와 달리 촛불을 켜지 않으며 축문을 읽는 절차가 없고, 밥과 국 대신 설날에는 떡국을, 추석에는 송편을 놓고, 조상님이 식사를 하실 때 자리를 떠나 있는 합문이라는 절차가 없습니다.
우리에겐 많은 문화가 있으며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생겨난 많은 문화에 의해 융합, 변화되며 발전해 왔습니다. 이런 문화는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며 살찌워 왔습니다. 이것이 타민족에 대해 우리가 누구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무조건 옛것을 고집해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나를 알고 그 바탕위에 새로운 것을 쌓아 가는 것만이 진정한 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