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김영호 칼럼 차한잔의 사색
21세기 의사의 희망 코드

관리자 기자  2000.10.07 00:00:00

기사프린트

공동개원이 이 시대 의사들 누구에게나 올바른 생존의 해법이 될 수있을까?
2000년의 가을이 지나가는 지금, 사회는 여전히 급변하고 있다. 70년대 라디오 방송의 드라마 제목이라고만 생각한 ‘격동의 세월’이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요즈음 다시 절감하면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걱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의료계의 의약분업 진통 중에도 개원가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공동 개원’은 이미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화두(話頭)가 되었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내세우는 선두 그룹들의 경영 전략을 배우러 많은 이들이 세미나장을 메우고 있다. 과연 ‘공동개원’이라는 동업형태는 이 시대 의사들 누구에게나 올바른 생존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 ? 오천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우리 민족의 사상과 전통은 사람과 사물을 수직적, 종적인 관계로 파악하는 특성을 길렀다고 한다. 유교적인 영향에 뿌리박은 서열의 가치관은 한 형제간에서도 ‘장유유서’의 엄격한 순서가 있고 생명이 없는 방에도 윗목, 아랫목을 구분하며, 같은 해에 교수 발령이 나도 3월 1일자와 5월 1일 자에 따라 선후가 구분되는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지나온 길을 돌아다보면 학생시절부터 인턴, 레지던트에서 전임 강사, ...... 교수, 명예 교수에 이르기까지 층층시하의 난코스였다. 내가 어떻게 이 수직 구조에 적응하고 어떻게 노력하면서 상승하여 왔던가를 생각해볼 때 결코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종적 구조와는 달리 같은 직급이나 동료들과의 횡적 구조에서, 연대 의식은 빈약하면서도(특히 경제적, 교육적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 연대 의식은 더 희박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불편한 경쟁의식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을 만들고 있음을 보게된다. 이는 긴장감 없이 강한 동지 의식으로 결속되어 있는 서양의 ‘컬리그(colleague)’와 매우 대조된다 하겠다. 공동 개원은 동업이라는 횡적 구조의 전형이며,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아 나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같은 능력과 권리를 갖는 사람들이 이룩한 합리적인 비즈니스의 형태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토론과 협의를 통해 합리적인 해답을 끌어내는 데에 미숙하다. 또 돈의 계산도 서로 면전에서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럽고 어색하게 생각한다. 약속과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사고에도 철저하지 않아서 사회 도처에 이같은 일로 인한 분쟁이 속출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성실’과 ‘정직’이 마땅한 대접과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식’으로서의 공동개원은 과연 우리에게 얼만큼의 만족감과 자유를 느끼게 할 수 있을까? 해마다 명절이나 제사 때면 개인의 처지나 의사에 상관없이 온 가족들의‘집합 장소’에 가기 위해 하루 길을 마다 않고 가야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단지 외국 교육을 좀 받고 거기서 몇 년간 지냈다 하여 동업이라는 횡적 구조를 서구처럼 ‘평생’동안 지속할 수 있을까 ? 누가 뭐래도 공동 개원은 의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희망적인 ‘21세기 코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 내면에 살아 숨쉬는 수직 구조의 편견과 비합리적 사고의 벽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공동 개원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룹의 구성원은 이합집산(離合集散)을 거듭하거나 어느 순간 유행이 지나가듯 허무하게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공동체의식과 상대에 대한 배려가 어린 시절부터 우리 생활의 근간이 되도록 교육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 세대가 시행착오를 거치며 노력한 결과로 우리 후손들은 이 극복하기 힘든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유전자 코드를 지니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화복지위원회 문·화·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