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리’ 그림 앞치마 두른 치의
“애들 눈높이에 맞췄어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견디기 어려운 치료를 잘 참아 주는 아이들, 잘 돌아가지 않는 입으로 ‘선생님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뒤뚱뒤뚱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로 돌아가는 아이들. 이들이 있기에 내 남은 인생이 한층 더 풍요로워지는 듯한 느낌이다.……’
-우광균 에세이 ‘세월’ 중에서-.
사회에 입은 은혜, 건강할 때 환원
치과 기자재 전부 장애학교에 기증
인천에 있는 정신지체 특수학교인 연일학교에 가면 하얀 가운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진료하는 치과의사를 만날 수 있다. 바로 禹光均(우광균·73세) 인천연일학교 치과보건관리소장.
더구나 앞치마에는 애들이 좋아하는 ‘아기공룡 둘리’ 그림이 귀엽게 아로새겨져 있다. 禹 소장이 손수 디자인했다고.
“처음엔 모르고 흰 것과 녹색 가운을 번갈아 입었었는데 애들이 많이 무서워하고 치과 오는 걸 꺼려하더라구요. 그래서 애들과 눈높이를 맞추다 보니 이런 방법을 생각해 냈죠.”
아니나다를까 인터뷰 중에도 적지 않은 애들이 禹 소장이 있는 치과에 들르곤 할아버지 대하듯 재롱을 피웠다.
禹 소장이 연일학교에서 360여명의 정신지체 장애아들을 돌본지도 이번 달 말이면 꼬박 2년이 된다. 지난 99년 10월 인천 중구에서 40년간이나 운영해온 정든 치과를 정리하고 그 곳에 있던 치과 관련 기자재 전부를 연일학교에 기증하면서 몸소 치과보건관리소를 개소했다.
“평소 이 사회에 입은 은혜를 늘 감사하면서 기회가 되면 사회에 환원했으면 하고 생각해 왔는데 마침 연일학교에서 나를 필요로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하루라도 건강할 때 실천하자고 결심했죠.”
물론 禹 소장 주위에서의 반대도 없었던 것 아니었다. 70세라는 연로한 나이에 힘에 부칠까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禹 소장의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지금도 禹 소장은 아이들을 치료하고 집으로 향할 때가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禹 소장은 매주 월∼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禹 소장이 하루에 돌보는 아이들만도 평균 10명에 이른다.
주창섭 연일학교장은 “정상인도 진료하기 힘드실텐테 이렇게 정신지체아들을 매일 돌봐주는 소장님이 너무 대단해 보이고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실제 禹 소장은 부총리 표창을 비롯해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인천교육대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禹 소장은 “상도 받고 언론매체에도 소개되는게 때론 가식적인 봉사를 내 자신이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그럴수록 더 책임감이 들고 해서 꼭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미소지며 말했다.
禹 소장이 처음 아이들을 진료할 때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아이들과 친해지는데만 1년여가 소요됐다고. 에피소드를 묻자, 禹 소장은 “특히 한 아이가 있는데 울면서 치과에서 날 물어뜯고 안경도 깨지고… 그랬는데 그럴수록 껴안아주고 뽀뽀하고 1년쯤 노력하니까 맘을 열고 어떤 아이보다도 날 잘 따르게 됐다”고.
禹 소장은 진료 외에도 구강검사 및 치아건강예방교육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또 중증치료의 경우 적절한 병원을 추천, 섭외해 주기도 한다.
요즘 禹 소장은 한가지 근심이 있다. 다름 아닌 禹 소장의 뒤를 이어 연일학교에서 진료를 맡아줄 치과의사가 꼭 있었으면 하는 거다. 물론 건강이 허락하는데까지 禹 소장은 아이들을 돌볼 참이다.
<신경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