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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나는 호모사피엔스요!”
최구영(본지 집필위원)

관리자 기자  2001.09.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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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가 보스니아에서 이른바 `인종청소’를 한창 자행하던 지난해의 뉴스 한 장면. 폐허가 된 시가지에서 부상을 당한 중년의 사내에게 한 서방 기자가 물었다. “당신은 이슬람 교도 입니까?” 턱수염이며 머리에 쓴 터번으로 보아 이슬람교도가 분명한 그 사람은 노기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요!.” 주지하다시피 동방정교를 주로 믿는 세르비아 세력은 처음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공격했었다. 이 두 지역은 가톨릭 신앙을 지닌 사람들이 대부분인 곳이다. 이에 서유럽 여러 나라들이 즉각 일어나 제재를 다짐하고 나섰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세르비아의 주 공격무대는 이슬람교도들이 주로 사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로 바뀌었고 이때 서방세계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며칠 전 세계의 경찰임을 자임하는 초강대국 미국의 심장부에서 영화의 상상력도 무색하게 하는 테러가 일어났다. 뉴요커들의 절규와 교차 편집돼 전해지는 일부 이슬람 교도들의 섬뜩한 환호성… 냉전 이후의 세계질서는 정녕 새뮤얼 헌팅턴이 말한 바 대로 `문명의 충돌’ 시대로 치닫고 있는 것인가. 동방정교이든, 가톨릭이든, 이슬람이든 그 어느 종교도 살육을 가르치지 않는다. 더군다나 성서에 따르면 신앙의 원조 아브라함이 사라에게서 얻은 아들 이삭이 기독교의 뿌리라면, 아브라함이 하가에게서 얻은 아들 이스마일이 이슬람의 뿌리이다. 그러니까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은 형제간의 동족상잔인 셈이다. 동유럽에서 공산주의가 몰락한 후 서구 지성사회에서 한창 회자되고 있는 `톨레랑스’는 관용으로 번역할 수 있는 프랑스어이다. 1763년 볼테르가 신교도라는 이유로 어떤 사람이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처형되자 이에 격노해 `톨레랑스 조약’이라는 책을 썼던 것이 그 유래이다. 이 책에서 볼테르는 특히 `이교도’에 대한 톨레랑스를 강조하고 있다. 결국 톨레랑스란 상대방이 나의 생각과 다를 때, 그의 생각을 뜯어고치기 위해 강제와 폭력을 동원하는 대신 서로의 `차이’를 그대로 용인하는 태도를 말한다. 반복해서 방영되고 있는 이번 테러사건을 보면서 `이교도’는 자신들이 믿고 있는 종교의 전도와 섬김의 대상이지 결코 적이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물론 이번 테러가 단순히 종교 갈등 때문에만 벌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난마처럼 얽힌 인종·정치·경제·국제관계에 의한 원한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궁극적으로 종교적 힘 뿐이다. 종교적 진리의 눈으로 보면, 대량살인을 불러 일으키는 갈등도 같은 뿌리를 가진 인간들 사이의 하찮은 `차이’로 보일 것이다. 모든 인류는 `호모사피엔스’인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위대한 종교는 톨레랑스를 가르친다. 다만 원한에 눈이 먼 조급한 몇몇 사람들이 이를 오독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