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구강보건사업이 잘 되었다고 알려진 미국령의 어느 조그만 섬으로 출장을 가기로 예정되었던 전날 밤, 주위사람들이 나쁜 관행대로 건전한 주점에서 가벼운 송별회식을 열어주었다.
술이 거나하게 되었을 무렵 도우미 여종업원이 조금 전 TV를 얼핏 봤는데 미국에서는 여객기가 초고층 빌딩을 그냥 뚫고 날아갔다고 들었단다. 얘가 무슨 쓸데없는 잠꼬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냐면서 모두들 핀잔도 주고 과격한 친구는 쥐어박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나까지도 피해를 봐서 다음날 아침 비행기 결항으로 공항에서 집으로 되돌아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테러는 주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쪽에서 큰 힘을 가진 상대에게 정정당당히 맞서지 못할 상황일 때 저항과 반항의 한 수단으로 반칙을 범하며, 치사하고 비겁하게 일격을 가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고교시절 평소 주먹자랑으로 힘없는 애들을 괴롭히던 녀석에게 어느 힘없는 친구는 정정당당히 대들지 못하고 그 녀석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동안 환기 창문으로 오물 한 통을 쏟아 부어주었는데 누구의 소행인지 심증은 가나 밝혀내지 못하였던 일이 생각난다.
대다수 반 아이들이 키득대며 고소해 했는데 의외로 그 이후 그 녀석의 반 아이들 대하는 태도가 확 달라졌다는 것이다. 모두들 집단 소동과 구타를 염려했지만 그 녀석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생활했고 힘없는 친구들에게도 상당히 점잖게 대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성숙된 대테러전이다. 이후 반 아이들은 그 녀석을 남자답다고 진정 따르는 무리까지 생겨났다.
테러나 인질극은 치사한 방법이고 잔악하기에 철저히 대비하고 또 응징해야 한다. 한방에 백만불이나 든 미사일을 수백방 쏘아대며 아프간의 건물같지도 않은 초라한 군사 본부건물을 파괴하고, 공터 운동장 같은 군사 훈련장에 폭격 맞은 구덩이를 잔뜩 만든 것으로 분이 풀리겠는가 의문도 든다.
조그만 건축업을 하는 집사람은 신문에 난 폭격 전후 사진을 보며, 본래 이 정도의 건물이라면 한방에 백만불 짜리 미사일 쓸 것도 없이 자기에게 맡겨주면 인부 몇 명만 보내서 백만원이면 깔끔하게 건축폐기물까지 처리해 주며 부수어 줄 수 있다고 철없는 말까지 한다.
많은 사람들이 테러에 대한 전쟁 상황을 잘 이야기하면서 왜 이런 지경으로 오게 되었을까 하는 것은 크게 생각하지 아니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처음부터 힘센 자가 좀 더 관대하였으면 하는 아쉬움과 사랑과 신의 축복을 구현한다는 종교의 미명 아래 그간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인간의 피를 흘리게 하였던가하는 회의감마저 든다.
세계사적인 안목으로부터 국내로 그리고 우리의 주위로 좁혀서 한번 살펴보자. 국민의 뜻이라는 말로 정치인들은 얼마나 많이 국민의 뜻을 거역해 왔던가. 국민건강을 위해서라는 말로 의료계는 얼마나 많이 우리의 이해관계를 도모하였던가 우리 분야도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개인이나 집단이나 힘 좀 있다고 약한 자를 무시해서는 엉뚱한 피해를 당하기 쉽다. 모든 분야의 상호 공존의식이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