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때부터 시작… “35년 선율에 묻혀 살지요”
사람의 육성과 가장 가까운 소리를 내고 이 세상의 어느 악기보다 섬세함을 지닌 여성스러운 악기입니다.
보고 듣는 것보다 직접 해보면 정말 어려운 악기이지요.
많은 음악가들은 최고의 소리를 위해서 작은 공간에서 이 악기를 켜고 또 켭니다.
왜냐구요?
그들은 최고의 소리를 들어 봤기에……, 그것을 닮아 가려고……
그것은 바로 신이 준 선물 바이올린.
“바이올린을 사랑하세요? 직접 연주해보면 그 감동으로 인해 머리가 쭈뼛쭈뼛 서고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랍니다.”
네살때부터 바이올린과 인연을 맺고 지금은 한국 아마추어 페스티발 앙상블(KAFE : the Korean Amatuer Festival Ensemble)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연주하는 金龍範(김용범) 서울시 중구 드림치과 원장.
KAFE는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진 아마추어들이 모여 연주 수준을 프로의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2000년에 재창단됐으며 지난 88년 창단된 ‘오존 챔버 앙상블’을 전신으로 하는 아마추어 연주단체다.
金 원장은 지난 3일 영산아트홀에서 열린 KAFE의 두 번째 정기연주회에 참석, 멘델스존의 ‘현을 위한 심포니아 제6번’과 모짜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4번, D 장조, K. 218’, 수크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Op. 6’을 연주하고 또 한번 바이올린의 묘미에 빠졌다.
金 원장의 주변 이력을 살펴보는 것은 그의 음악세계를 이해하는데 한몫 한다.
金 원장의 어머니는 서울대 음대 피아노과 출신이며 부인은 숙명여대 피아노과를 졸업, 남동생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첼리스트로 대학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여동생은 연세대 음대를 졸업한 비올리스트로 부천시립교향악단에 재직중이다.
장인은 건국대 음대 작곡과 교수를 지내다 정년퇴임, 장모 또한 건국대 음대 작곡과 교수로 재직중, 처제와 제수씨는 피아니스트.
이처럼 온 집안이 음악가 출신이다보니 음악을 하지 않는 사람도 이 집안에 들어오면 악기를 다루게 될 정도라고.
매제는 음악과 관련없는 해양학과를 졸업했으나 결혼 후 집안 식구들이 모두 하나, 두 개정도의 악기를 다루는 것을 보고 호른을 배우기 시작, 지금은 유니필 오케스트라에서 총무를 맡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金 원장은 연세치대 시절 덴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단장을 맡았으며 무지카 아카데미아 단장을 역임한 바 있고 지금은 연세치대 덴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OB 총무를 맡고 있다.
金 원장은 지난 93년 공보의 시절에 가졌던, 연주회장이 ‘울음 바다’로 변한 잊지 못할 연주회가 있다고 한다.
당시 지휘자가 공연을 며칠 앞두고 돌연 급사한 것.
부랴부랴 지휘자를 구했고 당일 연주회는 추모음악회 형식으로 치러졌다.
행사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마지막 곡인 미완성 교향곡 2악장을 연주하던 중 갑자기 연주회장이 정전이 돼 버렸던 것.
“프로연주자들이었다면 악보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연주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 아마추어들은 너무나 열심히 연주한 탓에 악보를 모두 외워 정전 속에서도 연주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었던 지휘자와 함께 전년도 음악회에서 연주했던 곡을 앵콜로 연주하는 중간에 정전됐던 불이 다시 들어왔던 것이다.
추모음악회였던 만큼 죽은 지휘자의 부모도 참석을 했었고 관객들은 “지휘자가 왔다 갔다”고 수군대기 시작, 공연장은 금새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金 원장은 지금도 손가락이 굳을까봐 연세치대 덴탈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와 KAFE의 정기연주회만큼은 부지런히 쫓아다닌다고 한다.
바이올린의 활이 네 줄 사이를 자유롭게 노래부르는 가운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金 원장은 앞으로 단원들과 함께 마음껏 연주할 수 있는 보금자리인 음악을 위한 까페를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안정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