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WTC빌딩에 참혹한 테러가 발생한 직후, 격앙된 부시 미대통령은 “새로운 십자군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연설했다가 국내외의 혹독한 비판을 받고 발언을 서둘러 취소해야만 했다.
역사적으로 십자군은 기독교인이 보기에는 성지를 되찾으려는 순교자이지만, 이슬람교도의 눈에는 수백년 고향을 강탈하려는 도적일 뿐이다. 이런 이유에서 세계의 경찰로서 반인륜적 테러를 응징하려는 미국의 대통령이 ‘십자군’ 운운한 것은 경솔한 발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시대를 일컬어 ‘다원주의’시대라 한다. 하나의 문화, 하나의 가치관, 하나의 종교가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와 다양한 가치관, 여러 종교가 함께 어울려 공존하는 시대라는 뜻이다. 특히 우리가 인정해야만 할 것은 여러 종교가 함께 서로 이웃하며 공존하는 종교적 다원현상의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종교의 기원과 발달을 살펴보더라도, 모든 종교들은 다른 종교들과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셈족 부족종교 중 하나에서 발전한 유대교는 ‘바빌론 포로’시절 조로아스터교로부터 천사, 부활, 최후심판, 낙원 등의 개념을 받아들였고, 기독교는 유대교에 그리스 철학을 결합시켰으며, 이슬람교는 이 두 종교와 접촉하면서 발전하였다.
인도 불교는 힌두의 금욕적인 문화에 반응하면서 발흥한 반면 힌두교는 인도 고유의 아리안 사상과 드라비다의 종교사상이 결합하여 형성되었다. 인도 불교는 중국으로 건너가 도가사상과 결합하여 선불교가 된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에서 나온 시크교 등등.
독일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1904~84)는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도 신의 정신은 각자의 삶 속에 작용한다고 본다. 단지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계시를 보다 명확히 받기 때문에 구원 받을 가능성이 더 클 뿐이라고 이른바 포괄(포용)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이 입장은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등 다른 종교의 포괄주의자 들에게도 똑 같은 방식으로 유효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부 종교 근본주의자들은 국내는 물론 세계곳곳에서 증오와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종교도 다른 사회조직과 마찬가지로 서로 관계를 가지면서 자라나고 변화하는 것이다. 변화하지 않는 종교는 죽은 종교이다. 어떤 종교이든 타종교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변증법적인 성장을 이루어야 보다 위대한 종교가 될 수 있다.
신이 자기들만의 신이라고 보는 ‘부족신’의 신관(神觀)과 교리를 문자 그대로 믿고, 모든 것을 순종촵불순종으로 따지는 율법주의 신관은 극복되어야 한다.
세계 안에서 작용하고 인간과 대면하는 실재로서의 궁극적인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사랑의 신, 평화의 신, 정의의 신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