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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작은 사랑의 힘
김영일(본지 집필위원)

관리자 기자  2001.12.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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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의 부인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위문 차 방문했을 때 남루한 옷차림과는 달리 눈빛이 초롱초롱한 고등학생이 막 문을 나서려는 참이었다.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고는 돌아서는 그 학생이 앉았던 의자의 옆에는 음료수 한 박스가 곱게 놓여있었다. 그 날 들은 이야기지만 학생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진학할 처지가 못되었으나 친구 부인이 다달이 받는 월급에서 쪼갠 장학금 덕택으로 어엿한 고등학생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익명으로 학교측에 장학금을 전달했는데 담임선생님이 학생에게 친구 부인의 이름을 알려주었던 모양이다. 예상치 못한 학생의 방문 때문인지 부인의 눈가에는 촉촉한 눈물이 맺혀갔다. 월급에서 다달이 쪼개 모은 장학금이 한 학생의 길 앞에 놓인 장애물을 없애 주어 외도의 길을 가지 않게 해 준 것이다.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다고 하지만 아직도 이 사회는 이러한 작은 사랑들이 모인 힘 때문에 아름답지 않나 생각된다. 며칠 전에는 첫눈이 내렸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한파로 오한을 느낄 정도인데 없고 가난한 이들이 어떻게 살을 베는 겨울의 추위를 날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중증장애인, 이들을 의지할 사회는 혼자 벌어먹고 살기에 바둥거린다. 그러나 어디에서든 작은 사랑들은 있는 모양이다. 번잡한 거리의 모서리에는 초라하지만 아름다운 구세군 냄비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신문지상에는 사회, 시민단체들이 주축이 된 김장김치 담가주기, 쌀 전달하기를 비롯한 작은 사랑들이 겨울 추위를 물리치고 있다는 미담소식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사회는 비판이나 비난의 대상만은 아니다. 내 역시 사회의 한 구성원이기 때문에 때로는 비판이나 비난을 극복해야 할 주체가 되는 것이다. 세상이 부정적으로 다가올 때는 입장을 바꿔보는 것도 좋다. 내가 아는 어느 장애아동은 부모님을 저주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자신을 낳아 속상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면 송구스러울 뿐이라고 한다. 입장을 바꾸니까 가끔은 장애로 낳은 부모를 원망도 하련만 오히려 부모에게 죄송한 것이다. 개인주의로 치닫는 사회를 비판만 하지 말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는 것도 소중한 삶의 과정이 아닐까. 나 때문에 사회가 비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작은 사랑들이 모였을 때 큰 힘을 발휘한다. 작은 샛강들이 모여 큰 강을 이루는 이치와 다름이 있을까? 추운 겨울, 연말 연시만이라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사랑을 마음으로부터 베푸는 기회를 갖자. 그것이 결국은 내가 사는 사회와 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