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방이 드디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11월 142개국 회원국이 참가한 가운데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뉴라운드가 채택되면서 2∼3년후부터 의료개방은 필연적이 되었다. 당시 언론은 국민들에게 직접적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농수산 개방쪽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는 통에 정작 국민들의 의료환경이 크게 변할 수 있는 의료개방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만큼 언론이나 국민 모두 이 분야의 개방화에 따른 문제의 심각성에는 무지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최근 미국의 의료전문업체인 치과교정센터(OCA)는 이러한 국제적 추세에 따라 먼저 국내 의료진에게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세계적 규모를 가진 의료전문업체가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의료개방이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를 예견하는 것이어서 국내 치과의료계는 물론 전 의료계가 긴장하고 있는 것 같다. OCA는 마치 1866년에 있었던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나 1876년에 일어났던 일본 군함 운요호 사건에 견줄 만 한 일이다. 쇄국정책이 무너지기 시작한 사건으로 외세에 의해 개방을 해야 했던 쓰라린 사건이다. 이러한 일이 21세기 벽두부터 또 다시 되풀이 하여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내 의료계는 그동안 정부의 비호아래 안주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의료법이라는 테두리 안에 각종 규제를 받아 왔지만 반면에 그 규제를 통해 강력한 기득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의료개방이 되면 이러한 보호막이 거둬지게 된다. WTO체제 아래서 미국이나 유럽의 의료자본들은 국내에 상륙하기 이전에 의료법 개정을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다. 그들은 관련법을 개정하여 합법적으로 의료산업을 일궈나갈 것이 명확한 일이다.
OCA의 국내 진출 시도는 단순히 치과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양질의 서비스와 고가의 장비 및 고도의 의료기술을 제공하는 외국자본이 들어온다면 과연 국내 의료기관중 온건히 살아남을 기관이 얼마나 될지 걱정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과연 이 사안에 대해 우리 의료계가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직 그 심각성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정부나 의료계 어디건간에 의료개방 준비를 해 오고 있다는 곳은 없어 보인다. 이제야 정부에서 보건의료위원회를 만들어 가동하기 시작한 정도이다.
치과계는 물론 의료계 전반은 이번 OCA 사건을 계기로 눈을 떠야 한다. 이제 앞으로 남은 2∼3년여의 기간동안만이라도 의료계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면밀히 검토하여 본격적인 의료개방에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지금으로서는 수세로 있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만큼 국내 치과계 및 의료계는 경쟁력을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 의료계가 장비나 기술, 제약 모두 외국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사실은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의료개방으로 역수출도 가능하기에 오히려 우리가 앞으로 도전해 볼 만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희망이라도 갖고 과감한 인식변화를 통해 다각적인 대응방안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그 길만이 살 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