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치대 89학번 양승욱·하태헌씨 사법고시 동시 합격
양승욱씨 “구강보건법 제정 관여하면서 자연스레 공부”
하태헌씨 “치의로서 삶 부끄럽지 않게 법조인 생활할 터”
지난해에는 영화 "친구"가 크게 히트했다. 영화내용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인생을 살면서 많은 친구를 만나게 된다.
이런 친구를 한번 소개해 본다.
둘은 서울치대에 같은해 입학했다.
연극부에서 잠시 같이 활동했었지만, 졸업후 각자 다른 곳에서 치과의사의 길을 걸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후 이들은 사법고시 1차 시험장에서 우연히 만났다.
"어, 너가 여기 왠일이야" 서로는 이렇게 말하고 한바탕 웃을 수밖에 없었다.
둘은 그렇게 말했지만 내놓라하는 법대생들을 제치고, 시험치른 교실에서 단 2명만 합격했을뿐인 힘든 시험에서 서로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달 28일 제 43회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명단에 서울치대 출신 양승욱씨가 있었다.
축한한다는 말에 "이제 사법고시는 매년 1000명씩 나오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시험은 아닙니다"라고 겸손해 하며, 의대 출신과 약대출신 합격자도 이번 시험에 있다고 귀뜸했다.
1000명씩 뽑는 시험이 돼버린 사법시험이 이제는 다양한 출신과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합격을 하면서, 사회적으로도 그리 큰 주목을 받을 시험을 아니라는 것이다.
양씨는 지난 89년에 서울치대에 입학해서, 치과의사면허를 받고 98년 4월까지 공보의 생활을 했다.
공보의 시절 양씨는 공중보건의사협의회 총무국장을 지내며, 韓永哲(한영철) 전 치협 치무이사와 함께 구강보건과 부활과 구강보건법 제정에 실무진으로 깊이 참여할 기회를 얻게됐다.
韓 전 이사와 趙英秀(조영수) 치무이사 아래서 국민을 위한 구강보건 사업의 큰 두 축인 구강보건과 부활, 구강보건법 제정에 관여하면서, 양씨는 많은 일을 돕기도 하고 자신의 마음속에 치과의사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 시기였다고 말했다.
치과의사로서의 살아갈 방향을 생각해 보며 양승욱씨는 보건사회연구원에서 공보의로 근무하며, 보건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치과의사로서의 삶과 함께 자연스럽게 사회를 위해 자신의 삶을 더욱 치열히 하고 싶어 사법고시에 대한 동기부여도 동시에 갖게 됐다고 한다.
공보의시절을 남들보다 좀 힘들게 보냈다는 생각에 결혼후 좀 쉬다가 공부를 시작한 것이 사법고시 입문기이다.
첫 시험은 떨어졌는데, 그때 한 전 치무이사의 위로가 큰 힘이 됐으며, 그후로도 힘들때마다 한 이사는 열렬한 지지자가 돼주었다고 한다.
여러가지 다양한 삶을 살아 보고 싶다는 양승욱씨는 앞으로 사법연수원에서도 열심히 살아 갈 것이지만, 자신은 구강보건정책연구회 회원이라며, 이제 다시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또한 양씨는 치대시절 문혁수 교수도 고마웠던 스승이라며, 지금은 건강이 나빠져 제자로서 안타깝다며 빠른 쾌유와 함께 건강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태헌씨는 서울치대를 졸업하고 교정과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98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공보의 생활을 했다.
사법시험은 공보의 기간중인 2000년에 1차, 2001년에 2차를 통과했다.
공보의 생활로 도저히 공부량이 절대 부족한 상태에서 시험을 통과했는데, 그것도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시작 3년만에 합격한 것이다.
3차 면접에 들어갔을 때, 성적이 극히 우수한 예비합격자들에게는 성적을 대강 알려주는 관행이 있는데, 하태헌씨는 탑클래스라며 면접관들이 칭찬했다고 한다.
1000명씩이나 뽑는 사법시험에서 판사는 그야말로 성적순인데, 그중에서도 더욱 우수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서울지역 판사를 京板(경판)이라고 한다.
하씨는 경판도 가능한 성적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는데 이런 성적을 거둔 비결을 묻자, 자신은 오히려 사법시험보다 서울치대 교정과에 인턴지원하고 기다릴때가 더 긴장됐었다며, 치대에서도 단기간의 집중적인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 많아 거기서 공부노하우를 많이 익혔다고 한다.
진로를 묻자, 변호사를 할 바에는 의사를 하는게 훨씬 났다며, 이제는 수입이나 희소성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의사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자신은 법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수련까지 받은 치과의술은 이제 비영리적으로 사용하고 싶다며, 하태헌씨가 개인적으로 겪은 경험을 들려줬다.
97년에 결혼하고, 99년에 아이가 많이 아팠는데, 병원에서 아이가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며, 장애인이 이렇게 평범한 사람도 될 수 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사회를 위해서 작은 도움이라도 베푸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제 아이도 건강해졌으며, 시험도 통과해 한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