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가 남해와 동해와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은 일몰 때의 분위기 때문이다. 해무에 반쯤은 몸을 가린 채 태양은 마지막 은총의 비단 길을 주룩 펼쳐 놓는 것이니, 어쩌면 길다란 금빛 실장어 떼를 한줄로 풀어 놓은 듯, 바다 끝에서부터 주욱 밀려들어오는 빛의 향연은 어둠이 깔리는 배경 속에서 찬연하다.
그 빛의 끝자락이 넓은 서해의 갯벌에 은총처럼 퍼지면 그예 마음 속 뻘 밭에도 평안의 광휘가 눈물처럼 번져 가는 것이다. 서해는 낙조와 쿨럭이는 바다 그리고 갯벌, 이 세 가지로 채색된 감동적인 유화이다.
그러나, 안면도에서 첫 대면한 철학자 서해바다는 새로 개통된 멋없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 선 부안에서 갑자기 특유의 모습을 잃고 말았다. 새만금 간척사업! 단군 이래 최대 아니 세계 최대의 간척 사업이라고 선전하던 바로 그 사업 때문이었다.
이 사업은 군산에서 부안까지 망경강과 동진강의 하류를 다 막아서 여의도의 140배나 되는 바다를 없애 땅을 만드는 일이다. 바다를 가로질러 긴 뱀처럼 끝이 안보이게 뻗어 나가는 방파제가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서 나는 그만 마음 한구석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바벨탑! 구약시대의 인간들은 하늘에 닿기 위해 바벨탑을 쌓아 올라가다 진노한 신에 의해 무너져 내렸건만 이제 이 땅의 인간들은 바다를 가로지르며 바벨탑을 옆으로 쌓아가며 무모한 갯벌 죽이기를 하고 있었다.
이미 방파제 공사가 60% 쯤 끝나 그 넓은 갯벌은 흔적이 없었다. 드넓은 갯벌에 숨구멍을 내고 뻑뻑 숨을 쉬던 그 많은 작은 게들은, 바지락, 낙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그것들을 먹이로 날아들던 그 많은 철새들은 또 어디서 한 겨울을 나고 있을까? 정말 자연이 인간의 개발의 대상이기만 한가, 인간은 자연 보다 우월한 존재인가? 한 숨의 공기, 한 모금의 물도 자연에서 빌려오는 인간들이 하고 있는 무지한 모습을 바라보니 서해의 안온함은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새만금 전시관에 들어서니 사악한 인간들의 음모가 벽면에 그득하다. 식량자급을 위한 농토확보, 수자원 확보 등등. 아니 시화호의 전례도 벌써 잊었나, 개발비 보다도 수질정화에 드는 돈이 더 들어가는 것도 모른단 말인가, 썩은 물을 아무리 많이 확보하면 그것이 자원이 된다는 말인가? 쌀이 남아돌고 수매가 안되자 지방에서는 세금도 쌀로 내고 학생들은 수업료도 쌀로 내는 투쟁 중인데 식량을 얼마나 더 증산하자고 갯벌을 메운단 말인가?
갯벌을 그대로 두었을 때의 경제적 효용가치가 개발했을 때 보다 적어도 3배 더 높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인데도, 정치논리에 밀려 사라져 가는 갯벌을 바라보니 분노를 넘어 절망감이 밀려 들어온다.
내게 힘이 있다면 저 바다를 가로질러 나가는 오만한 몸통을 확 무너 뜨리리라, 그리하여 막혔던 물들이 화합하고 물 속에서 죽어가던 갯벌들이 다시 숨을 쉬며 서해의 아름다운 낙조를 은총으로 받을 수 있게 하리라.
그리하여 서해를 바라보는 우리 인간들에게 영원히 위로의 말을 걸어 오게 하리라! 이제 제발 그만 두어라 개발의 망령에 사로 잡힌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이제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