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법에 상대의 실상을 파악하고 나서 스스로를 확인하라는 지피지기(知彼知己)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바꾸면 "먼저 나를 알고 남을 헤아려라"는 뜻으로 생각해보고 싶다. 남을 알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를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세상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이 옳고 내가 주장하는 것만이 지고지선한 것으로 떠벌리며 남의 생각이나 남의 말은 한마디도 귀에 담아두려하지 않는 일들이 많지만 이런 사람들과의 만남이란 한결같이 편협적이고 비타협적인 파국의 결과뿐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흔히,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에도 바른 자세가 전제되어야 하듯이 이쪽과 저쪽의 슬기로운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일방통행적인 독선밖에 남을 것이 없다.
모든 사람이 너나 할 것 없이 자기가 치러야 할 대가는 되도록 작게 하고 자기가 받아야 할 것은 크게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이기적이고 불합리한 사회는 없을 것이다.
남의 고통이 곧 내 아픔이 되고 나의 영광됨이 남의 기쁨으로 받아들여질 때 우리가 겪고있는 세상사이의 여러 가지 번거로움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 아닌가.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는 말 그대로, 자기가 스스로 치러야 할 어떤 대가보다는 남이 자기에게 치러야 할 대가만을 추구하고 지나치게 얽매이다 보니 남으로부터 내가 받아야할 대가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할 그 어떤 값도 항상 모자라고 보잘것 없기 마련 아닌가.
하찮은 재산, 보잘것 없는 권리, 대단치 않은 명예일지라도 그것에 수반되는 것은 덮어두고 누릴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얻어진 것인가 하는 자기 성찰이 아쉽기만 하다.
그것은 어쩌면 무작정 향유할 권리이기도 전에 바르게 써야 할 의무인 것이며 아무리 자신과 무관한 것이라 할 지라도 고통받는 이웃이 있는 한은 바로 그 스스로가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보는 의식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사소한 자기 이익, 자기 명분만을 내세워 남의 불행과 고통을 예사로 무시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더욱 더 목줄을 타는 솟구치는 뜨거운 말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오늘의 현실에서 오가는 말의 성찬앞에 무거운 마음을 가눌 길 없다. 왜 자신들의 말만 늘어놓는가. 남의 말, 남의생각 앞에는 왜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으려 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