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지키기 위한 힘의 행사는 폭력이 아니다”라는 것을 `역애불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 세계가 분노할 테러가 미국의 한가운데서 일어났었다. 세계는 한마음이 되어 테러를 규탄했고,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테러를 없애고자 하는 전쟁이 일어났다. 아프가니스탄이 국제사회에서 힘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자 했다면 지금 그들이 겪어 가는 고통은 그들의 몫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상황이 `역애불이’ 인가?
현재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이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테러를 응징하기 위해 제2, 제3의 테러지명 국가로의 전쟁을 확대를 공언, 경고하고 있다. 간음한 한 여자에 대한 처벌을 원하는 민중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스스로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자가 이 돌을 던져 저 여인을 벌하라”.
현재 테러의 죄를 지은 국가를 결정하는 것이 과연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인가? 과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분쟁에서 미국은 지나치게 이스라엘 편에 서 있어 왔다. 이러한 정치역사의 과정에서, 지금의 원한이 한단계, 한단계 쌓여 왔다는 주장이 그들에게는 있다. 이러한 원성은 인종차별과 종교적 차별이라는 비난을 그들에게 명분으로 제공해왔다.
그렇다면, 우리의 혈맹인 미국은 그러한 오해에 대해 뚜렷한 반대증거를 제시해야만,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대 테러전쟁에 명분이 생긴다. 과거 독일의 나치 정권의 인종차별을 바탕으로 한 만행은 독일인 스스로도 반성하고 있으며 세계의 역사는 유죄로 결론 짖고 있다.
그러나, 나치즘이 일어나던 당시에는 독일의 부국강병에 크나큰 공헌을 함으로써 독일에서는 당시 반대파가 없어졌을 정도의 독일 민중의 큰 흐름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나라를 위해 다른 나라를 제물로 삼는, 힘에 의한 지배를 목적으로 하는 패권주의였다.
그리고 역사는 이를 유죄로 결정했다. 현재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1950년대 이후 생겨난 네오나치즘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종차별적 우익운동이 문제화되고 있다. 미국에서 테러를 응징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이, 테러를 빌미로 자신들의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대국주의(great power chauvinism)나 패권주의(hegemony)가 아니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여 `악의 축’ 발언에 대한 우방인 한국에 대해 오해를 푼 것은 미국이 가지는 대 테러전쟁에 명분을 부여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우리나라는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 할 때, 역사적으로, 힘으로 지배하는 패도정치 보다는 인(仁)과 덕(德)을 바탕으로 하는 왕도(王道)정치를 이상적인 정치형태로써 지켜 왔다.
작은 나라에서 국민을 다스리는 정치도 기본이 이렇다. 하물며 나라사이의 관계를 조율하여 평화로운 세계를 가꾸고자 하는 국가간의 정치에서는 큰 나라들은 힘을 사용함에 더욱더 조심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