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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미술 대전서 수상 경력
박우성 대구 수성치과원장

관리자 기자  2002.03.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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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희망을 그린다” 화가로서의 삶 얻은 것 보단 잃은게 많아 “그래도 난 행복한 치과의사” ’98년 대구미술대전입선, 99년 영남미술대전특선 및 박우성 개인전, 2000년 신진작가발언전 및 대구미술대전입선, 미술세계대상전입선, 2001 신진작가발언전, 2002 신진작가발언전…’등 다수. 치과의사인지 화가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수많은 전시 및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는 박우성 대구 수성치과의원 원장. 그는 그의 화려한 이력에 솔깃한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지난 24일, 일요일 오후 대구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 달음에 서울까지 날아와 시원한 병맥주 한 병에 자신의 삶을 맛깔스럽게 풀어내 주었다. “그림에 치우친 나의 일상은 얻은 것 보단 잃은 것이 더 많고 또 다른 일상을 추구했던 나의 일상은 어색하고 가식적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가시광선이라는 순수미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부터 그림에 푹 빠져들게 됐다는 그. 졸업 후 95년 개원을 하고서도 그 열정은 지속됐다. 치과 내에 작업실을 만들어 환자를 진료하는 시간 틈틈이 붓을 잡았다. “한참을 작품에 몰두, 붓 놀림이 절정에 달해있는데 당장 진료를 해야할 환자가 찾아와서 작업을 멈춰야 할 때면 정말 너무나 아쉽죠. 끊긴 흐림을 다시 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치과의사가 본업이 맞는지 의심케 하는 멘트다. “저에게 치과의사가 아닌 또 다른 일상은 바로 꿈이고 희망이죠. 언제든 여건이 되면 그림 그리는 일에만 매달려 보고 싶어요. ” 아마 그래서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 첫 마디에서 그림에 치우친 자신의 일상이 얻은 것 보단 잃은 것이 더 많다고 넋두리하듯 풀어냈는지도. 삶, 가족, 사람, 사랑... 등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관심이 많은 그는 이러한 문제들을 그때 그때의 느낌에 따라 다양한 관점으로 풀어낼 수 있는 비구상이나 추상작품을 선호한다. 그래서 대부분 그의 작품엔 추상화가 많다. 그러나 사실 그대로를 묘사하듯 표현한 작품도 몇 점 있다. 작품 속에 유니트 체어와 유리창에 박혀있는 ‘치과’란 단어가 선명하게 보인다. 역시나 그에게 치과의사라는 직업은 ‘추상’이기 보단 ‘현실’인가 보다. “최근에 치과 안에 기공실이 들어서면서 없어져 버렸지만 예전에 8평정도 되는 공간에 제 작품을 전시 해 놓은 갤러리를 만들어 놓았던 적이 있어요. 치료를 받으러 왔던 환자들이 카페에 온 기분이라며 무척이나 좋아하시더군요. 진료를 받으러 오실 때도 더 부담 없이 편하게 오게 되고…” 그가 늘 꿈꾸는 화가로서의 또 다른 일상과 치과의사라는 현실의 일상이 함께 존재하는 공간. 그의 갤러리가 그랬다. “그때 확신하게 됐죠. 그림에 치우친 나의 일상으로 인해 얻은 것 보단 잃어버린 것이 많긴 하지만 그러한 일상이 ‘치과와 문화의 접목’을 이뤄내게 했다”고. 그는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환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해 주기도 하고 또 작품을 나눠주기도 하면서 치과의 높은 문턱을 낮추고, 권위를 벗어버렸다. 그는 또 작품활동이나 갤러리 운영을 통해 문화와 치과를 접목 시켜나가는 작업 외에도 치과 문턱을 낮추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었다. 기자의 다그침에 별거 아니라고 쑥스러운 듯 그가 털어놓은 일들. 그 일들이 오히려 그를 더욱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게 했다. “농아 환자가 치과엘 찾아왔었는데... 의사소통이 돼야 말이죠. 칠판에 메모를 해가며 겨우 겨우 진료를 마쳤죠. 안되겠다 싶어 당장 책자를 구입해 위생사들과 아침마다 30분씩 공부를 했어요.” 그러나 책으로만 공부하기엔 한계가 있어 결국 수화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문화원에 등록, 3개월 코스 수업을... 그것도 반복해서 3번, 총 9개월을 그렇게 매달렸다. 이제 그는 농아인들 사이에 수화를 하는 치과의사로 알려져 그의 치과엔 유달리 농아인 환자들이 많다. 아예 농아인 선교원에서 그의 치과를 적극 추천해 주기도... 그는 현재 치과진료시 사용이 가능한 수화 동작들을 엮은 치과배치용 안내책자를 준비하고 있다. <강은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