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하프 코스를 뛰어 1시간 58분에 들어왔다. 아, 이거 별것 아니구나로 생각하고 두달 후에 있을 대회에 나가 1시간 40분에 골인, 18분을 단축해 올 가을쯤 풀코스에 도전하기로 했다. 3시간 25분의 기록을 내서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나 혼자만의 야무진 다짐을 했다. 들뜬 기분으로 두번째 대회에 참가했다.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없으면서도 연습은 게을리하고 말로는 자신만만하게 큰소리치면서 아주 건방지게 달렸다. 나이의 한계를 생각해보지도 않고 시험을 치르는 것도 아닌데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동료들과 함께 처음 전반은 평소 속도로 달렸다.
15km지점에 이르러 속도를 내기로 했다. 얼마나 빨리 달렸던지 옆에 달리던 사람들이 혹시 중간에서 뛰어나와 장난삼아 달리는 사람으로 의문시하면서 의아해하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약 4km정도는 말 그대로 촌놈 마라톤 하듯이 승부를 걸었다.
많은 사람들을 따라 잡는 순간은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봐라, 나는 할 수 있다. 내 나이에도 이렇게 빨리 달리는데 저렇게 젊은 사람이 느리게 달려서야 체력이 말이 되나. 내 나이를 알면 아마 깜짝 놀랄거야.
스스로 만족하며 폼을 잡고 달렸다. 무조건 14분을 단축해야 된다는 일념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이렇게 빨리 달려도 몸에 아무 이상이 없는걸 보니 차라리 첨부터 이렇게 빨리 달리면 많이 단축할 수 있었을텐데 하면서 후회를 했다. 아니, 이게 왠일인가. 내가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달리는 흉내만 냈지, 거의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혼신의 힘을 다해 뛰는데 그동안 내가 따라잡은 사람들이 거의 나를 비웃는 듯이 보면서 달리고 있지 않은가. 마음은 죽으라고 달리고 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죽을 맛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한 속도로 달리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빨리 달리지도 않은것 같은데 잡히고 있으니 창피하기도 하였다.
2km정도 남겨놓고 뛰는 흉내만 내면서 서서히 후회하기 시작했다. 바보야, 나이가 50이 다 되면서 지금껏 아직도 그 단순한 진리를 모르고 내 욕심만 챙기고 살아왔니 하고 반문하였다. 앞으로 살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짧을텐데 지금도 인생을 그렇게 살고있니?
후회하고 바보라고 여러번 속으로 뉘우치면서 반성하며 골인지점에 도착했다. 4분이 단축되었다. 잔디밭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며 웃었다. 정신차리라고 누군가 외쳤다. 다음날 온 몸과 마음이 망가졌다.
어제 전주 군산 대회에 3번째 도전했다. 욕심을 버리고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며 기분 좋게 뛰었다. 빨리 뛰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4분이 단축된 1시간 50분으로 골인하였다. 욕심을 버리니 8분을 앞당긴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