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4일 베트남 중부 푸옌성 투이호아 현에서는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한겨레21이 국민모금으로 모은 성금으로 현지에서 ‘한-베 평화공원’ 기공식을 하였다. 한겨레 최학래 사장 및 일행들과 ‘베트남 평화의료 연대’의 대표로 내가 참석하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참전하여 여러가지로 베트남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과거사를 반성하며 화해와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의미깊은 첫삽이 떠졌다.
기공식이 끝난 후 조금 떨어진 강가에 자리잡은 식당에서 베트남 현지 관리들과 점심식사를 했다. 그 강이 바로 쏭바강이었다. 쏭바강에 이르는 길은 소설의 제목만큼이나 멀었다.
인천에서 호치민까지 다섯 시간, 다음 날 국내선 프로펠러기로 한 시간 걸려 닿은 나짱에서 다시 버스로 6시간을 달려서야 쏭바강이 있는 베트남 중부 푸옌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틀이 걸린 셈이었다. 베트남 어로 ‘어머니 강’이란 쏭바강은 풍요한 젖퉁이를 흔들어 끝없이 넓은 벌판에 젖을 먹이며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푸옌성의 주석은 아주 온화하면서도 인텔리로서의 기품이 있었다. ‘베트남 평화의료연대’의 활동에 관해 잘 알고 있으며 고맙다는 이야기와 내년에는 푸옌성에 와서 진료를 해 줄 수 없겠냐는 부탁도 했었다.
이야기 도중 구순구개열 환자의 수술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우리 단체는 3년 째 베트남 중부 지역에서 치과진료를 해 왔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부산치대 김종렬 교수 팀이 구순구개열 수술을 해주어 좋은 평판을 받았던 터이었다.
유독 베트남에는 구순구개열 환자가 많고 그것이 고엽제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의견 교환이 있었다. 그곳 주석의 이야기로는 베트남에서는 고엽제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거론할 수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만 400만명이고 부상자는 셀 수도 없는 판에 고엽제 피해자 문제를 거론해봐야 정부로서는 도와줄 여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서로들 어두운 표정으로 무심히 흐르는 쏭바강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잠시 전쟁박물관을 찾아갔다. 호치민 시 중심에 위치한 전쟁 박물관은 베트남 민중이 프랑스와 일본, 그리고 미국 및 연합군 군대와 수 십년의 전쟁을 치루며 흘린 피와 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중 한 건물은 고엽제 피해관이었다.
건물의 안에는 각종 고엽제의 후유증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 한켠에는 차마 볼 수 없는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보이는 기형태아들이 포르말린 병에 넣어져 전시되어 있었다.
고엽제관을 나서며 나는 뜨거운 열사의 햇살 아래에서 진한 분노를 이기지 못하였다. 도대체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세계의 자유와 정의의 파수꾼이라고 자처하며 남의 나라의 인권까지 간섭하지 않는가?
그리고, 베트남 전쟁 후 70년대 말부터 미국사회에서 고엽제 후유증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수 많은 연구비를 들이며 역학조사를 하고 공식적으로 1984년에는 미국참전 용사 중 후유증이 확인된 사람들에게 1억8,400달러를 보상하기 시작하여 고엽제에 대해 치료 및 보상을 해 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정작 수백배 피해를 준 베트남 국민들에게는 아직도 보상은 커녕 조사도 하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한국에도 고엽제 후유증으로 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데 그게 우리의 잘못이란 말인가?
도대체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신의 국민의 인권만 소중하며 약소국의 사람은 하등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 아닌가?
아, 머나먼 쏭바강!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한 풍요의 강에 마음의 눈물을 떨구며 베트남을 떠나는 마음 여전히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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