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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차한잔의 사색>
우리는 어떤 대화를 하는가 ?

관리자 기자  2000.11.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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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통하여 드러나는 말은 한 개인의 생각을 표현하며 당시의 사회상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명철한 사람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다’ 오랜만에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해관계를 떠난 ‘우정’의 대화가 얼마나 큰 힘으로 우리의 일상을 훈훈하게 하는지 알 것 같다. 그러나 때로 전공이 다른 친구들끼리 모이면 서로간의 공통 주제가 없어 난감할 때도 있고, 같은 분야를 공부하고 같은 직업을 지닌 친구들의 모임에서도 대화의 물꼬가 잘 트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결국은 그냥 술이나 더 마시고 객기를 부리면서 "평범한" 코스로 자리를 이어가기도 한다. 퇴근 후 저녁 무렵 식당 한 편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의 나이를 헤아리면 그들이 즐길 이야기가 무엇인지 대체로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전쟁을 겪은 예전의 기성 세대는 흔히 군대와 여자 이야기(이 부분은 여자 분들의 이해를 바란다) 외에는 별로 할 말이 없다는 자조 섞인 우스개 소리를 하며 역사의 굴곡을 넘어왔다. 요즈음의 젊은 세대는 전 세대의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들으면서 자랐지만 시대의 조류를 타고 많이 다양화되고 풍요로워져서 자동차, 인터넷 동호회 등 매니아적인 기호를 말하기도 하며 골프 등의 취미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특히 최근 들어 골프는 한국의 여자 골퍼들이 세계의 무대에서 우승을 거듭하는 것이 화제가 되면서 세간의 큰 관심사가 되었다. 흡사 예전의 전쟁영웅담이 골프영웅담으로 바뀐 듯한 인상을 줄 정도로 이 시대 대화의 자화상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들은 대화에서 소외되거나 사회 생활에서 사교적이지 못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세대의 구분 없이 모임에서 나누는 대화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남의 이야기 하기 좋아하는 ‘험담 문화’라고 한다. 악의가 있든 없든 직장 동료들이 모이면 상사에 대하여, 동네 주부들이 모이면 누구네 엄마에 대하여 개인적인 사생활까지도 여지없이 들춰내며 남녀노소 모두 즐거워한다. 당사자가 들으면 놀라고 흥분할 일을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편안하게 얘기하다가 모임이 파할 때쯤 되면 모두들 그에 대해서 잊어버린 것처럼 즐겁고 유익하였다는 느낌으로 귀가를 서두르는 것이다. 그런 면을 들어 이 험담 문화가 우리 민족의 단점이라기 보다 인간 관계의 스트레스에 대한 가벼운 해소책이라고 긍정적인 해석을 하는 학자도 있다. 실제로 험담을 통해 어떤 사람에 대한 음모로 발전하는 예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대화를 통하여 드러나는 말은 한 개인의 생각을 표현하게 되고, 이 대화의 내용과 경향은 당시의 사회상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한 때는 과도하게 첨예화된 이념이 정직한 언로를 폐쇄하였던 때도 있었고, 항간에 떠도는 정치적 유언비어를 목소리를 낮춰 주고받던 시절도 있었다. 의도되었건 의도되지 않았건 간에 우리의 입을 떠난 말은 잠재된 독성을 지닌 채 사람들 사이를 떠돈다.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다고 하였는데 우리의 대화는 어떤 말들로 이루어져 있는가? 만나도 정작 나눌 이야기가 없고 나눔의 향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공유할 주제가 없다는 의미도 되지만 우리 지성의 치부를 노출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형태로든 익숙했던 대화에서의 결별은 힘이 들것이다. 어제까지 화제로 삼았던 즐거운 험담에서 하루아침에 도약을 꿈꾸기는 누구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익숙함으로부터의 결별’이 소시민적 생각과 삶으로부터의 결별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지성의 지평으로 걸어갈 준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지금 나누는 대화는 우리 아이들이 이룰 다음 세대 문화의 모습을 결정짓는 이정표가 되리라는 믿음으로 다시 한번 스스로를 점검해볼 일이다. 문화복지위원회 문·화·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