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을 통해 자신을 발견
정신과 의사이며 ‘로고 테라피’의 창시자인 빅토르 프랑클 박사는 “인간에게는
프로이트가 말한 쾌락원칙에 따르는 본성 뿐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묻고 또 그 의미를
추구하려는 또 다른 원초적 욕구가 있다.”고 말한다. 의미(logos)는 논리(logic)보다도 심오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상과 가치를 위해 살아갈 수 있고 또 죽을 수도 있는 존재인
것이다.
‘연극’이라는 예술장르는 나의 삶에 취미 이상의 어떤 의미를 부여해 준다. 이는
‘연극’이 참여자의 입장에서는 집단 창작의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요, 관객의 입장에서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여러 다른 삶의 모습 속에서 나를 발견하게 하고 내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1999년 여름, 연극을 사랑하는 여러 치과의사들과 뜻을 모아 ‘연극을 사랑하는 치과인
모임’을 결성하게 되었고 10월 말 유진 오닐의 ‘세일즈 맨의 죽음’으로 창단 공연을
가졌다. 약 3개월 간의 연습과정은 가끔 TV를 통해서 보는 운동 선수들의 지옥훈련 과정 그
이상의 고된 작업이었다. 하지만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오늘 우리의 현실과의 대비, 작품
속의 등장 인물들의 모습, 성격, 있음 직한 버릇 등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면서 느낀
한 작품이 새로이 태어나는 집단창작의 즐거움은 땀 흘린 자 만이 가질 수 있는 보람과 기쁨
바로 그것이었다. 그 결과 국립예술원 연극과 김석만 교수, 극단 연우무대 정한룡대표를
비롯하여 많은 연극계 인사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찬사를 받았다.
마침 지난 봄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직업극단에 의한 ‘세일즈 맨의 죽음’ 공연이 있어
단원들과 함께 감상할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럽게도 살아 있지 못한
대사는 관객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 무대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생각해 본다.
희곡이 무대에서 힘을 발하고 대사 하나 하나가 생명을 갖고 다시 태어나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그 원동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비록 여러 가지 미비한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연극의 위대한 힘은 또한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앞에서 밝혔듯이 우리의 창단공연도 바로 ‘세일즈 맨의 죽음’이었다. 그 공연은 전국
치과대학 출신들이 힘을 모아 올린 첫번 째 무대였으며, 단원들 뿐 만이 아니라 치과인
모두가 자긍심을 가져도 될 훌륭한 무대였다고 굳게 믿는다.
지난 여름부터 나는 오는 11월 16일부터 4일간 청담동 ‘유 시어터’극장에서 공연될
‘앙띠곤느’의 연습장면을 지켜보면서 연출자와 배우들의 엄청난 열기와 에너지를 느끼며
“연극 창작활동은 단순한 취미생활 이상의 그 무엇이다.”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고 있다.
직접 배우로 참여하였던 작년의 창단 공연과는 다른 입장에서 머지않아 객석에 앉아 무대
위의 여러 등장 인물들에서 수 많은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게다. 그리고 내 삶의 반추도
이어지리라.
나와 함께 그 객석에서 이런 소중한 경험을 공유할 치과인들이 올 가을엔 더욱 많아질 것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