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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립극장 무대에 선 푸른 가운
이한우(본지 집필위원)

관리자 기자  2002.07.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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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9일은 여러 가지로 의미깊은 날이었다. 사상 최초로 우리나라 팀이 월드컵 3·4위전에 출전하여 전국을 붉은 물결로 요동치게 만든 날이었고, 서해에서는 해상교전이 벌어져 꽃다운 젊음들이 스러져 간 날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그 와중에서도 국립극장 대무대에서는 ‘한-베트남 평화 예술제’가 열려 평화의 메시지를 예술에 담아 무대를 감동으로 달구었다. 이 날의 공연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건치)’ 산하 조직인 ‘베트남평화의료연대’가 베트남 전쟁 당시 일어난 한국군에 의한 양민학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운동을 해온 ‘국제민주연대’와 ‘나와 우리’라는 단체들과 공동으로 만들어 낸 것이었다. ‘베트남 평화의료연대’는 치과의사를 주축으로 해서 만들어진 단체로 베트남 문제에 관하여 지속적 관심을 가지고 매년 봄마다 베트남 중부 지역에서 3년째 진료 활동을 해 왔다. 그러다가 베트남전 문제를 한국 사회에서 문화라는 형식을 빌어 확산시키고자 이 예술제를 준비한 것이다. 베트남 최고의 음악가라는 바오 푹이 단장으로 인솔해 온 베트남 어린이 합창단과 타악 연주단 10명을 포함하여 총 출연진만 15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무대였으며 춤, 영상, 타악 연주, 독주, 합창 등 다양한 장르를 포함한 총체극이었다. 특히, 87년 6월 민주화 항쟁 당시 거리에서 한풀이 춤을 추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서울대 이애주 교수의 춤은 무대의 격조를 한결 높였다. 많은 사람들의 자원봉사와 피땀으로 이루어진 공연의 피날레는 국립극장 대공연장 무대를 초록색 진료가운으로 장식한 ‘베트남 평화의료연대’ 회원들의 합창이었다. 베트남 땅에서는 몰려드는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땀으로 범벅이 되던 초록색 가운이 무대에서는 베트남 전쟁이라고 하는 참혹한 역사에서 빚어진 어둠을 넘어서 평화를 향한 푸른 희망으로 넘실거렸다. 공연을 전후해서 취재를 나온 여러 기자들의 공통된 질문은 어떻게 치과의사들이 이러한 예술적 공연을 기획했는가하는 점이었다. 이런 질문들의 근저에는 치과의사는 진료라고 하는 하나의 형식으로만 대중들과 만나왔다는 인식이 깔려있다고 본다. 더구나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야기된 사태로 인하여 의료인 집단을 이기적 권력집단으로 몰아간 여론몰이 덕분에 의료인들과 대중 사이의 간격은 더욱 벌어져 있다. 그러나 대중을 탓하기 전에 의료인이기에 앞서 지식인이며 지성인이어야 할 의료집단이 우리 나라의 역사발전에 얼마나 긍정적으로 기여해 왔으며 대중과의 폭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해 왔는가 하는 점은 우리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의료인들은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이익 추구에만 급급한 이기적 전문집단으로 매도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가져야만 한다. 의료는 물론 다양한 방면에서 대중들과 조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균형잡힌 지성인으로서 문화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실 문화에 대한 투자만큼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없다. 치협은 예산 중 얼마나 격조 높은 문화에 대해 투자를 하는지 모르지만 이러한 투자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개인들이 문화나 예술에 대해 안목을 넓히고 작은 돈이라도 꾸준히 후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의 한 조각쯤 만이라도 우리 국민들이 예술과 문화에 대해 투자를 한다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살만한 나라가 될까? 희망 한 조각을 태풍이 지나간 하늘에 띄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