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세상물정을 모를 리 없는 <연사모>가
이 작품을 택한 것은 아마추어 단체의 순수한 무모함으로
이 시대의 경박과 천박을 꾸짖기 위함이었으리라
용기에 놀라웠고, 무모함이 부러웠고 감동이 소중했다
연사모(연극을 사랑하는 치과인 모임)의 제2회 공연 <안티곤느>를 지난 11월 19일(일)에
보았다. 요즈음과 같은 시대에 이런 연극을 하다니 놀라웠다. 그 용기에 놀라웠고 그
무모함이 부러웠고, 그 감동이 소중했다. 아마 대부분의 관객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신나는 구석이 어디 있겠는가. 무거운 머리와 싸늘한
가슴을 안고 입을 굳게 다물고 두 눈 부릅뜨고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은 이
세상에 이런 연극을 보게 될 줄이야. 어느 관객은 극장을 빠져 나오며 “아, 이런 경박한
시대에 이런 진중한 작품이 올려지다니...” 하면서 고개를 몇 차례나 크게 끄덕거렸다.
누가 나에게 이 시대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를 내려보라고 하면 서슴치 않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피난민의 삶”이라고 대답하겠다. 무언가 불안하고 모든 게 임시적이고 일시적이다.
그래서 뭔가 대접받을 자격은 있다고 느껴지나 충분히 대접을 받고 살고 있는 듯하지
못하다. 무례와 무질서와 폭압적인 일방적 처사가 아직도 판을 치고 있다. 감히 말하건대
천박한 시대에 경박한 것들이 대박만 노리는 사회가 된 듯하다. 그렇다. 누가 감히 이런
시대에 <안티곤느>를 올릴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저런 세상물정을 모를 리 없는
<연사모>가 이 작품을 택한 것은 아마추어 단체의 순수한 무모함으로 이 시대의 경박과
천박을 꾸짖기 위함이었으리라.
작년 이맘 때 동숭동에서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탄생을 알리더니 올해는 <안티곤느>로
얼굴의 모습을 뚜렷히 선보였다.
안티곤느는 유명한 오이디프스의 딸이다. 오이디프스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나서 두
눈을 뽑고 먼 유랑의 길을 떠난다. 그 후 테에베 왕국은 오이디프스의 두 아들이 번갈아가며
다스리게 되어 있었으나 권력투쟁으로 두 아들은 서로 싸우다 죽고 만다.
테에베는 오이디프스의 처남 크레온이 통치하게 되었다. 크레온은 테에베에 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하여 오이디프스의 죽은 두 아들 중 큰아들은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게 하고 둘째
아들은 나라에 반역을 하였다 하여 시체를 들판에 썩게 놓아둔다. 그리고 누구든 시체를
묻으려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포고령을 내린다.
안티곤느는 오빠의 시체를 묻어주는 게 자신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하고 포고령을 거역하고
오빠의 시체를 묻어주고 포고령의 위반자로 체포된다. 크레온은 조카 안티곤느의 행적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회유를 한다.
그러나 안티곤느는 오빠의 시체를 묻는 일을 포기 할 수 없다고 크레온의 회유를 거절한다.
크레온은 통치를 위하여 조카 안티곤느를 죽게만든다. 안티곤느의 죽음은 크레온의 아들과
아내의 죽음을 가져온다. 그러나 크레온은 여전히 각료회의를 주재한다.
아주 단순한 줄거리이다. 그러나 크레온 왕과 안티곤느의 대결, 갈등은 이 작품의 백미이다.
어느 연극에서도 두 사람 사이에 이만한 갈등의 대립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윌리 로만과 큰 아들 비프의 갈등을 백이라고 한다면 크레온과 안티곤느의
갈등은 거기에 다시 백을 곱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연사모>는 이러한 작품을 택했을 뿐 아니라 이를 ‘제대로’ 올림으로서 감동을
끌어내었다. 모든 구성원들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프로 연출가 손진책씨가 이 연극을
보다가 “아니, 웬 장민호 선생까지...?” 하고 놀랐다는 이동찬님의 굵직한 목소리와
카리스마는 크레온에 제격이었다.
여기에 맞서는 안티곤느에는 그 어머니가 보고 자신을 보는 듯 했을 여운계님의 딸
차가현님이 맡았는데 두 사람의 열연은 이들이 직업을 잘못 택한 듯 싶을 정도로 멋졌다.
어디 두 배역 뿐이랴. 두 인물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이를 시각화시키기 위하여 두 분신이
창조되었는데 이석우님과 손병석님의 차별적 인물화는 매우 돋보였다. 관객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해설자와 익살스런 경비병, 여기에 외국 유학에서 돌아와 정식으로 데뷔를 한
정승호의 무대와 조명, <연사모> 회원들의 기획과 음악, 효과 등등 모두 신뢰가 가는
앙상블을 이루었다.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대체 연극이 무엇인가? 공연을 통하여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듯 보이기 위해서
얼마나 깊은 속알이를 했을 것인가. 하루저녁 만 얼마 짜리 표 한 장으로 몇 시간을
투자하여 “나는 오늘 인생에서 무엇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