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아들 ‘골수 섬유화증’병마와 씨름
이식수술 못해 하루하루 힘겨운 나날
난치병 환자 위한 사업에 전력 다해
“칠십 평생을 어려운 것 모르고 온실에 화초처럼 곱게만 살아왔는데 이제야 비로소 삶의 참 맛을 알아 가는 것 같아요."
언제나 당당한 모습에 여장부 같은 기백을 지닌 최금자 대한여자치과의사회 회장.
서울치대 동기였던 남편과 함께 30년 넘게 치과를 운영하면서 슬하에 1남 3녀를 둔 최 회장은 그간 대치 및 대여치 활동 등 치과계 내부적인 활동과 더불어 여성계 운동을 활발히 펼쳐 왔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어려움이란 것을 모르고 곱고 행복하게만 살아왔던 최 회장이 인생의 황혼기인 일흔의 나이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진정한 삶의 참 맛을 알았다고 털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지난해 4월 최 회장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황경량(42)씨가 ‘골수 섬유화증" 에 걸리면서 칠십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삶의 쓴맛을 맛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인생의 힘든 역경을 경험하고 있다"는 최 회장은 최근 아들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해줄 사람이 나타나기만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골수섬유화증은 백혈병으로 진행돼 조혈모세포이식술 외엔 달리 치료할 방법이 없는 희귀병이다.
최 회장의 아들은 지난 해 9월, 26살의 건강한 조혈모세포기증 서약자가 나타났으나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길 끝내 거부하는 바람에 이식을 못하고 있다가 현재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발전된 상태다.
최 회장은 “아들의 조혈모세포와 일치하는 기증자를 찾았다는 기쁨은 잠시, 아들의 생명 줄을 쥐고 있는 기증자가 조혈모세포 기증을 거부하는 바람에 그 허탈감이 더욱더 커졌다"며 아직까지 그 아쉬움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최 회장은 결코 희망을 놓아 버리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백혈병과 같은 난치병 환자들을 위한 각종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제도적으로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최 회장은 이러한 난치병은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며 국가적 차원에서 장기적인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와 관련한 국가적 시책 마련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정부기관에 제출했다.
최 회장은 올 초 ▲출생 시 아이의 염색체를 검사해 국가에서 관리 활용하는 방안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고가의 백혈병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의료정책 및 건강보험의 정책적 지원 ▲국가차원의 골수기증관련 홍보 및 교육 ▲골수기증자에 대한 혜택 등을 담은 탄원서를 보건복지부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민참여센터에 제출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이러한 자신의 일이 치과계에 알려 지는 것을 무척이나 조심스러워 했다.
난치병 환자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들을 위한 사업에 동참을 요구하고도 싶지만 마치 자신 개인의 일 때문에 도움을 청하는 것 같은 인상을 심어 주게 될까봐서다.
자신의 일이 알려 지는 것을 조심스러워 하던 최 회장이 인터뷰 후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해 왔다.
최근 ‘암과 백혈병 등 난치성 환자의 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하는 본인부담액 상한선이 300만원으로 결정돼 빠르면 내년부터 도입될 계획이라는 뉴스를 접한 최 회장이 “그 동안 해왔던 일이 결과를 맺는 것 같아 보람이 있었으며 이제는 남들 앞에 자신의 얘기를 당당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본인부담액 상한제가 도입되면 장기 입원하는 만성 또는 중증환자는 본인이 부담하는 치료비(총진료비의 20%)가 300만원을 초과할 경우 300만원만 내고 나머지는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게 된다.
이러한 제도의 시행은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고가의 백혈병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러한 뉴스에 용기를 낸 최 회장은 “제가 좀더 일찍 사회에 이러한 이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더라면 좀더 빨리 지금의 일들을 추진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랬더라면 제 아들도 보다 많은 혜택을 누리고 이처럼 아파하지 않아도 됐을 것을….", “이러한 일은 어느 특정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들 누구에게나 일어 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며 치과계 인사들의 뜻있는 동참을 당당히 요청했다.
강은정 기자 human@k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