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하려고 했더라?”
진료실에서 원장실로 들어선 나는 멍하니 한참을 서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안경을 갖고 나왔다. 요즈음 들어 부쩍 생겨진 건망증이 나를 당황하게 하곤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이 나이가 들어 나타나는 생리현상인지 아니면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무관심인지 알 수가 없다. 언제부터인가 되풀이 되는 똑같은 일과가 힘들어지는 것이 나이가 들어 생겨난 나태함이거나 변화하는 현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초조함일 수 있지만 그런 상황을 이제까지 마냥 무시하고 모른 척 하고 지내왔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개원을 한지 12년이 지나고 보니 주위에 많은 것이 변하고 있음을 새삼 느끼곤 한다.
개원당시만 해도 핸드폰 사용이 일반인에게 흔치 않아서 환자와의 약속을 변경하려면 환자들에게 여러 번 전화를 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락이 되지를 않아 속을 태운 적도 많았다. 나는 아직도 컴맹이라 컴퓨터 이용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지는 않지만 Chart정리에서 진료까지 모든 작업을 컴퓨터로 처리하는 치과도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게 됐고, 의료보험증을 지참하지 않은 환자들도 인터넷으로 확인이 가능해져서 얼마 전부터는 나 또한 이런 혜택을 보고 있으니 많은 부분이 편리해졌다.
또한 그 당시만해도 치과인테리어는 깨끗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호텔 Lobby에 버금가는 고급스러운 내부 장식을 갖춘 치과가 늘어만 가고 공동개원이라든가 병원규모의 대형화된 치과들을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게 됐다.
치과의사들의 고압적인 태도에 환자들이 엄한 선생님으로 인식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서비스 업종의 한 분야로 정착하여 환자를 친절하게 대하는 교육까지 받아야 하는 현실이고 보면 그동안 많은 변화가 온 것 같다.
그런 변화에 적응도 못하고 시대의 흐름에 재빨리 동참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나는 아직도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나는 고압적인 자세로 임하거나 권위적인 성격은 아니어서 그 당시나 지금이나 환자를 대하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너무나 계산적이고 냉랭해진 환자들을 보면서 한없이 슬퍼질 때가 많다. Shopping Patient라고 하던가?
여러 곳의 치과를 다니면서 가격비교하고 품질검토 하듯이 의사를 마치 기능공으로 취급하는 환자들이 늘어만 가고 ,자신들에게 조금이라고 소홀한 듯하면 서비스업은 친절이 최우선임을 내세워 대우받기를 요구하는 환자들을 보며 세월은 나에게도 변화를 요구했지만 한편 환자들의 의식구조도 많은 변화를 갖게 했다.
성공한 치과의사가 되려면 여러 면에서 소질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환자진료, 환자관리, 고용인관리, 병원이미지관리 및 경제적인 병원경영에 이르기까지 탁월한 재능을 지녀야만 성공한 의사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여러 면에서 미숙해 지금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또한 급변하는 주변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급변하는 Digital시대에 동조하고 변화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지만 중년에 접어든 나에게 이제까지 길들여진 타성을 버리고 변화를 갖기란 몹시 힘들며 어설픈 변화는 안 변하는 것만 못한 것 같아 이대로 있기로 했다. 누군가 “그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그것을 즐기라”고 말한 것처럼 시대에 뒤떨어지기는 하지만 Analog mind인 나만의 방식으로 환자를 진료하고 생을 즐기며 세상물정을 모르는 나로 남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