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결의 현실에서 체제 경쟁적인 측면으로 70년대말 도입된 의료보험제도가 의료의 사회복지 기반을 이루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료수가와 의료행위의 임의적인 설정과 국민과 의료기관의 강제가입을 기반으로 하는 의료보험제도는 독재적 요소가 상당히 강했던 그 시절,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의료인에게 강제되었음도 사실이다.
의료보험제도의 출발이 이러함에도 의료계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 기반을 그대로 유지한 채 양적인 팽창을 이루어 1987년 국민개보험시대를 열었다. 관행수가의 1/2수준으로 출발한 의료수가는 도매물가지수의 상승폭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가인상으로 명목적 인상일 뿐 실질적 인하조치가 취해졌으며, 심사라는 과정을 통해 음양으로 의료행위를 통제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의료행위까지 제한하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정치경제의 기본질서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재를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의료계만을 사회복지라는 미명하에 처음의 강제적 기조를 현재까지 유지 강화하는 방향에서 추진되었다. 이런 면에서 의료인은 의료보험제도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의 의료제도를 자본주의나 민주주의 상반개념인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원용한 의료사회주의로 이해하였다.
의료사회주의라 하여 우리사회가 사회주의라는 말도 아니고 의료인이 우리나라가 사회주의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실상, 우리의 의료제도는 사회주의국가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사회주의국가의 의료제도는 의료공급자인 의료인의 양성에서부터 의료기관의 시설과 관리까지 모든 것을 국가에서 투자 관리한다. 모든 진료가 무상으로 제공되고 의료인도 국가에서 고용 관리한다.
이에 반해 우리의 의료제도는 투자는 개인이 하지만 투자된 인력과 시설을 보험공단을 통해 국가에서 통제한다. 의료인의 양성단계에서 국가의 투자는 거의 없어 개인의 재원으로 교육되고 훈련되어진다. 또한 의료기관을 포함한 의료시설은 대부분 민간에 의해 지어지고 관리되고 있다. 즉 의료에 대한 투자는 대부분 민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인의 의료행위와 관련된 대부분의 사항을 국가에서 통제 관리하고 있다. 집을 지어놨더니 객이 와서 주인행세하면서 사는 격이다. 이러한 정부의 의료인에 대한 행위는 의료사회주의라고 표현하기에도 충분하지가 못하다.
의료라는 분야는 인간의 기본권인 건강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자유로움과 영리추구가 제한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선진국에서도 국가에서 통제하는 사회주의적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국가에서 완전히 통제하는 사회주의와는 달리 의료인들 특히 개원의들의 자유로움을 인정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최근에 의협의 의료사회주의라는 주장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연구센터에서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를 국가개입주의라고 하였다 한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국가개입주의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의 직접투자가 선행(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공공의료수준은 선진국과는 전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민간주도형의 자유기업형이라는 미국에서 조차 공공병상비율이 우리의 9%에 비해 33%를 차지하고 있으며, 의료사회복지가 가장 뒤떨어졌다는 미국에서 전 국민의 24.2%에 해당하는 노령자와 극빈자의 의료를 국가가 보장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국가가 의료를 보장하는 국민은 몇%나 될까? 적극적인 국가의 투자가 없는 우리의 의료현실을 국가개입주의라고 한다면 그 국가는 어떤 형태의 국가라고 불러야 하는가?
의료인은 적어도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료행위를 남용하지 않겠다는 자존심 하나로 산다. 물론 그렇지 못한 동료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 자존심을 지키면서 의료사회주의 보다도 못한 제도하에서 정당한 대우도 받지 못하면서 묵묵히 진료에 임하는 동료들도 많다. 그들에 의해 우리의 의료제도가 지금까지 지탱되어 왔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