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아니었지만 가풍 있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보살이 있었다. 그 보살이 결혼을 했는데 시집은 친정과는 정반대의 집안이었다. 계모 시어머니 밑의 배다른 형제들은 사이가 나빴고 가족들 모두 언행이 거칠었다. 또한 자퇴·퇴학 등으로 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않았다. 그런 시집 식구들을 보면서 보살은 다짐했다. 내 자식들은 절대로 저렇게 키우지 않으리라, 시집 식구들 보란 듯이 제대로 키우리라 하고.
다행히 자식들은 반듯하게 컸다. 특히 아들은 공부도 잘했지만 다른 여러 가지 면에서도 재능을 나타냈다. 그 아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보살은 한껏 어깨를 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중학교 2학년 2학기 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상한 친구들과 어울리는가 싶더니 학교를 그만두고 중국집 배달원으로 가겠다느니, 자신을 포기해 달라느니 하면서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보살은 아들을 달래보고 꾸짖어보고 사정해보고 청소년 상담실에도 찾아가 보고, 해볼 것은 다 해보았다. 그러나 한번 빗나가기 시작한 아들은 어떠한 것도 통하지 않았다. 오직 친구들에게만 관심이 있었고 그 애들 말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서 말과 행동과 표정이 점점 거칠어졌는데, 그런 아들에게서 시집 식구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급한 피가 흐르는 시집 식구들의 모습이….
보살은 시집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애당초 이 진흙탕 같은 곳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자면 이혼을 해야 하는데,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고민만 하던 중에 한 친지의 소개로 우리 선원에 인연이 닿게 되었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살은 처음부터 열심히 선원에 다녔다. 부처님의 힘을 빌려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왕복 네 시간씩 걸리는 곳을 하루도 빠짐없이 다녔다. 그런데 하루하루 다니다 보니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생각은 없어지고 오히려 이런저런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시집 식구들에 대한 우월감, 자식에 대한 집착, 내가 잘났다는 생각 등등을.
그렇게 올라오는 마음을 하나하나 내려놓다 보니 차츰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잘난 것도 없으면서 온갖 허위의식으로 포장되어 있는 자신이….
그러니까 포장만 그럴듯했지 자신도 시집 식구들과 한 치 어긋남 없는 그 차원이었던 것이다. 금은 금대로 모이고 은은 은대로 모이고 깡통은 깡통대로 끼리끼리 모인다더니 참으로 맞는 말이었다.
그 때부터 보살은 더욱 자신을 내려놓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렇게 일 년쯤 지났을 때였다. 그 때까지도 아들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중학교는 졸업하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순화된 표정으로. 그러더니 얼마 후에는 고등학교에도 가겠다고 했다. 암흑 속에서 가느다란 빛을 본 심정이라고나 할까, 보살은 몇 년 만에 편안하게 숨을 쉬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기가 막힌 것은 보살 자신이었다. 그렇게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자 이미 놓았다고 생각했던 아들에 대한 집착과 시집 식구들에 대한 우월감이 다시 올라오는 것이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고액과외를 시켜서라도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냈으면 하는 생각이, 그래서 시집 식구들 앞에서 다시 당당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보살은 정신이 번쩍 났다. 그동안 열심히 놓았다고 놓은 것이 고작 이 정도인가 싶었다. 그와 같은 자각에 보살은 다시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내 아들이라는 생각, 내가 잘났다는 생각, 상대 때문이라는 생각을 올라오는 대로 놓고 또 놓았다.
그러는 동안 아들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대학에도 입학했다. 그러나 이제 보살은 좋다 생각, 싫다는 생각도 없다. 좋은 것이 있으면 싫은 것이 있는 법, 양면을 모두 놓아야 진정으로 놓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이 자리가 바로 내 자리임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