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설 거사는 통일신라시대의 사람이었다. ‘거사(居士)’란 재가 신자로서 득도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부설 거사는 인도의 유마 거사,중국의 방 거사와 함께 세계 3대 거사로 손꼽힌다. 그 부설 거사가 스님이었을 때 영희, 영조 두 스님과 함께 오대산으로 가던 중 김제 만경 땅에 사는 구무원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 집에는 묘화라는 벙어리 딸이 있었는데, 이 딸이 부설 스님을 보고는 그만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다음 날, 부설 스님이 떠나려고 하자 묘화는 옷소매를 붙잡고 매달렸다. 순간 막혔던 말문이 트이고, 묘화의 부모는 부설 스님에게 사위가 되어 줄 것을 간청한다. 이에 부설 스님은 오대산 수도를 포기하고 묘화와 인연을 맺는다. 부설 스님이 부설 거사가 된 것이다.
그 후 15년의 세월이 흘러 영희, 영조 스님이 다시 만경 땅을 찾았다. 이 때 부설 거사에게는 등운, 월명이라는 남매가 있었다. 이들을 보고 영희, 영조 스님이 말했다.
“우리 둘은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네. 그런데 그대는 속세의 정에 끌려 이렇게 낙오자가 되었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네.”
이에 부설 거사가 말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누가 더 공부를 많이 했는지 시험해 볼 텐가?”
부설 거사는 병 세 개에 물을 가득 담아 천장에 나란히 매달아 놓았다. 그것을 망치로 하나씩 치도록 했다.
먼저 영희, 영조 스님이 치자 물병이 깨지며 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부설 거사가 친 물병의 물은 쏟아지지 않았다. 병은 깨어졌으되 병 속의 물은 그대로 천장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보고 영희, 영조 스님은 부설 거사 앞에 무릎을 꿇고 가르침을 청했다.
이에 부설 거사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머물러 보는 바 없어 분별심이 없고
이끌려 듣는 바 없으니 시비 가림 또한 없다네.
분별심 시비심 모두 놓아 버리고
오로지 내 마음 부처님께 스스로 귀의했다네.
즉, 가정을 꾸리고 살림은 하고 있으나 어떠한 인연에도 머무는 바가 없으며, 어떠한 경계에도 시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오로지 자성(自性) 부처님께 놓고 갈 뿐이라는 것이다.
흔히들 수행이라 하면 절에 가서 삼천 배하고, 염불하고, 참선하는 것이 다인 줄 안다. 또 수행을 하려면 목욕재계하고, 비린 것 먹지 않고, 부부간에 잠자리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하는 것, 먹는 것, 사랑하는 것, 모든 것이 수행 아닌 것이 없다. 부설 거사와 같이 머무는 마음 시비하는 마음이 없다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도 수행이요, 직장에 나가 일하는 것도 수행이요,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는 것도 수행이요, 먹고 마시는 것도 수행이다.
그래서 큰스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우리는 수행하기 위해 태어났고, 수행하기 위해 살고 있다고. 따라서 하루 24시간의 모든 활동, 즉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세수하고, 식사를 하고, 사람을 만나고, 말하고 움직이고, 잠을 자는 모든 행위가 다 수행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나 자신에 귀의하고, 나 자신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그러나 간혹 생활은 뒷전이고, 삼천 배하러 쫓아다니고 염불하러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절하고 염불하면서 염주 돌리는 것만이 수행인 줄 알기 때문이다. 내면의 염주는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가 생활하면서 한 발 딛고 한 발 들 때마다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른채….
재가와 출가가 다르지 않다는 것은 생활이 곧 진리이며 삼천 배이며 염불이며 참선인 까닭이다. 부설 거사의 가르침도 바로 여기에 있으니, 지금 이 자리가 곧 수행처임을 알고, 맞닥뜨린 모든 인연 경계가 공부거리임을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