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모든 치명적인 질환은 각기 하나의 특정한 원인균을 갖고 있으므로 그 원인균을 찾아내어 특정한 약물로 파괴시키면 그 질병을 깨끗이 치유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질병만을 선택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합성된 어떤 약물을 사용하는 치료를 화학요법이라 하며, 그 이상적인 치료제를 마법의 탄환이라 불렀다. 제약회사와 훌륭한 의사들이 협력해 열성적으로 약물을 개발했고, 지금도 끊임없이 개발 연구되면서 새로운 약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세균들을 향해 마법의 탄환을 마구 발사하면서 그 위력 덕분으로 우리 의사들의 명예와 지위가 월등 높아지게 됐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현대의학은 모든 질병에 대해 특효의 마법의 지팡이가 있어 그것을 흔들면 어떤 병이든 씻은 듯이 사라질 것이라는 환각에 빠져있다. 그러나 질병마다 특효약이 존재한다는 지나친 기대감에 들떠 이런 약제들이 지니고 있는 보다 더 중요한 부작용에 대해서 잠시 망각한 채, 지나친 안도감에 빠져들고 있지나 않았었나 하는 자성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그 동안 개발된 많은 새로운 약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거의 기적의 치료약으로 작용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병을 앓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적의 치료약에 의해 쉽게 치료될 수 있는 그런 질환만을 갖고 있지 않다. 즉 약물에 의해 치료의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만성 퇴행성 질환이 현대 질병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엔 약물은 단지 질병의 진행을 지연시켜 주거나 정지시켜 주는 극히 소극적인 대응을 해줄 뿐, 극적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하기가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날 어떤 질환에도 엄밀한 의미의 마법의 탄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한 어떤 화학물질이나 약물이 살아 있는 생명체인 세균이나 또는 나쁜 종양 세포나 기능을 상실한 장기에 강력하게 약리작용을 하면서도 인체에 아무런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모순임을 알게 된다. 어떤 약제가 강력한 생물학적 효과를 지니고 있을수록 생물학적 효과를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인간을 향해 공격해 오는 세균의 모습은 마치 끊임없는 파도와 같아 밀려오는 세균의 침입으로 쉼 없이 인간의 건강을 위협한다. 마치 파도에 씻겨 가는 해변의 모습과도 같이 세균은 잠시 물러난 듯 경계심을 늦추어 안도감을 주는가 하면 다시 소홀한 틈을 타 건강을 해치며 밀려 들어와 계속 반복되는 위해(危害)를 인간에게 안겨준다. 세균들은 우리가 약물의 탄환을 아무리 마구 쏘아대도 세균은 더욱 약물에 적응하거나 저항하는 변이를 일으키며 인간을 향해 코웃음을 친다. 결국 인간과 미생물의 전형적인 진화론적 무기 경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계속 진화하고 있는 세균과 끊임없는 전쟁을 해 그 결과로 새로운 무기를 탄생시키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 무기마저도 결국 언젠가는 내성을 유발해 인체에 부작용을 일으키는 모순을 반복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인체에 항암제를 투여했다면 감수성을 지닌 암세포는 죽어 없어질 수도 있지만 내성을 지닌 암세포들은 다시 일어서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완벽하지 못한 존재이다. 그 몸체에 너무 맹목적으로 약물을 투여하고 너무 광범위하게 약물을 받아들이게 한다면 결코 인체에 유익할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약물 남용의 극치의 상황이다. 현대인들은 마치 약 없이는 못살 것 같은 느낌으로 약을 너무 가까이 하고 있다.
질병을 효과적으로 퇴치하는 것은 약물 같은 화학적 반응에 의존하는 것만이 상책은 아니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약물보다는 사회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할 일이 더 많다. 과밀한 환경, 공기의 혼탁, 상수도의 불결 등이 보다 질병을 일으키는 유해인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현미경 속의 미생물만이 질병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의사들이 아직도 하나의 질병에 한 가지 원인균이라는 가정 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