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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시론/이재일]슈바이처박사

관리자 기자  2004.10.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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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슈바이처, 우리 모두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아프리카의 성자이다. 그는 단순한 육신의 치료자가 아닌 영혼의 치료자로서 아프리카의 고통 받는 민중들 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하고자 했던 분이다. 과연 의사 또는 의과대학생으로서 그는 어떤 모습이었을 지가 궁금해진다. 슈바이처는 왜 의사가 됐을까? 슈바이처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을까? 왜 아프리카로 갔을까? 한국의 슈바이처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분들은 아프리카의 슈바이처 -혹은 독일의 슈바이처 - 와 어떻게 다를까? 슈바이처는 의사였기에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분이 됐을까?


슈바이처는 그의 나이 30세 이전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외형상의 모습만을 말한다. 그는 아주 젊은 나이에 신학박사학위를 받는다. 동시에 당대 최고의 파이프오르간 연주자로서 교회음악의 최고 정점에 있었으며, 신앙의 종교적, 학문적 완성도에서도 누구에 뒤지지 않는, 정말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받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던 그가 아프리카의 참상을 전해 듣고 그들을 도와주기 위한 기도회와 모금운동을 벌이던 중에 진정 자신이 할일은 깨끗한 정장을 하고 단상에서 품위 있는 연설과 설교를 해서 많은 돈을 모아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늦깎이 의학도의 길에 들어선 슈바이처는 37세에 의학박사가 됐고 이듬해 아프리카 람바레네로 건너가 의료봉사에 나섰다.


비록, 진로의 선회로 많은 시간이 낭비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그가 공부했던 철학과 신학은 의술보다 더 중요한 가르침을 남겼다. 많은 신학 연구와 집필경험을 통해 슈바이처로 하여금 그 누구보다도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마음깊이 느껴볼 수 있도록 해주었을 것이다. 당시 많은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고 그곳의 흑인 원주민들을 저급한 인간으로 취급한 반면, 슈바이처는 오랜 기간의 철학적 사유와 인격의 도야기간을 거치며 진정 의사에게 필요한 됨됨이를 마련한 것이었다.


그 다음 그의 행동은 우리들이 아는 것처럼 영광과 찬사로 점철된 길이라기보다는 고통스런 길이었다. 그가 의사가 된 것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었다. 그 수단은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로서 자신이 쓰일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일 뿐이었다. 만약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목수였으면 목수가 됐을 것이고 공학자가 필요한 곳이었으면 그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의아스런 눈빛과 반대 속에서 그는 서른의 나이에 의사의 길에 들어섰고 서른일곱에야 의사가 됐다. 그는 가장 뛰어난 의학적 기술이나 지식을 가졌거나 창조하지는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정말 필요한 곳에서 의술을 베푼 위대한 의사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의술은 무엇인가? 환자가 의사나 치과의사에게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전문대학원에 대해 여러 가지 부정적인 눈길을 본다. 시간의 낭비이며 의료소비자들의 경제적 부담만 키우는 행위라고, 나이든 학생들이 가진 생각은 경제적인 관심밖에는 없을 거라고, 나이 들어 시작한 의학공부가 환자를 치료하는데 충분하겠느냐고, 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이 비춰보이지는 않는가? 나이가 들고 세상을 알고 나서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된 사람을 뽑을 수는 없을까? 그냥, 진짜 슈바이처 한사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 가치 있는 성과가 아닐까? 우리의 교육제도는 사회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아는 사람을 뽑고 가르치는 방법을 갖지 못한 것인가?


슈바이처는 의사이었기에 슈바이처가 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슈바이처가 있었으면 그가 지금 같은 길을 갈 수가 있었을까? 그러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자신이 전문직업인이라는 것이 남들보다 우수한 능력으로 인해 주어진 특권이라 생각한다면 애초에 그는 전문직업인이 될 자격이 없다. “우리 현실은...”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는가?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