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이 내원하게 되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 중에 환자의 주소(Chief complain)를 듣는 일이다. 치과질환에서 일반적으로 환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증상은 ‘아프다’는 표현과 ‘이가 시리다’는 표현이 제일 많을 것이다. 교과서에 나열 되어있는 주소의 내용은 의학적인 용어로 동통, 치은출혈, 지각과민(Hypersensitivity), 입냄새, 잇몸가려움 등으로 기술이 되어 있지만 막상 환자들이 호소해오는 주소는 환자 나름대로의 극히 평범하고 유치한 표현으로 그들만의 특이한 언어(言語)로 표현하기 때문에 우리는 환자들이 그러한 호소를 재구성 편집하여 또다시 의학적인 주소로 바꾸어 판별, 분석함으로써 치과질환의 진단이나 치료방법을 선택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우리들이 가장 곤혹스럽고 또 오진을 범하기 쉬운 경우가 환자의 주소를 잘못 판별했을 때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과장되거나 엄살이 지나치거나 또는 전혀 거짓 호소를 해오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환자들의 호소를 그대로 받아 치료를 적응하면 과잉치료를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환자들의 초기진단 과정에선 환자들의 생각과 품성을 꾀뚤어 볼 수 있는 탐정가적인(detective agency) 소양마저 갖추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치과질환이란 진단의 학문이 아니다. 치과의 2대 질환이라 불리우는 충치나 잇몸병은 누구나가 찾아낼 수 있고 또 병의 유무를 본인 스스로가 알아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반면에 일반 내과질환은 사실은 진단의 확실성이 질환치료의 성패(成敗)를 가름하는 척도가 되는 질병이 대부분이다. 치과질환이 누구나 찾아내고 발견할 수 있는 단순한 질환이기 때문에 거기에 따르는 증상도 대체적으로 단순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어찌보면 단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즉 ‘아프다’ 또는 ‘이가 시리다’는 표현이 주종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다’, ‘이가 시리다’는 단순한 표현 속에 우리들이 찾아야 할 치료방법을 꼭집어 선택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환자들에게 치료방법을 선택하고 명확한 예후판단을 얻게 되는 것은 다른 임상가들이 관찰보고 한 자료에 의한 통합된 경험과 지식을 이용해서 내리는 과학적 추론의 일종으로 확률의 테두리 속의 가능성일 뿐이지 인과론적 관계(causal relationship)에 의해서 치료 의사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다시 말해서 ‘무당족집게’처럼 그 질병상태에 가장 확실하고 결정적인 치료법을 적용할 수는 없다는 뜻도 될 것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우리들은 지나치게 자기의 치료가 완전무결하기를 바라거나, 또 완전무결한 것으로 믿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행위(치료)를 우리 스스로 지나치게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싶어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들에게 강박관념을 줄 수도 있다. 치료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일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집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양말을 신겨야 할 때 장화를 신겨서는 안될 것이며 티셔츠 정도면 충분한 옷차림일 때 두터운 외투를 끼어 입히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환자들의 입 속에서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을 발견할 때면 민망스럽고, 죄송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모든 환자의 구강(입속)내에 우리들이 그려놓고, 입혀놓은 옷차림은 바로 우리 자신들의 자화상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환자에게 가장 적절하고 효율적인 치료선택을 하기 위해서 먼저 진단과정에서 타당성(validity)과 신뢰성(reliability)으로 평가를 얻을 수 있는 식견이 있어야 한다. 즉 환자에게 어떤 질환이 있다면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의 정확성에 대한 민감도가 있어야 하며 만일 질환이 없다면 질환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특이성도 있어야 한다. 우리들이 환자를 진단해서 예후를 예측하고 치료를 시행하게 될 때 대체적으로 3가지 유형을 생각해야 한다. 절망(hopeless), 의문(questionable), 양호(good) 등의 큰 테두리를 잡아서 분류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절망의 경우는 대부분 발치에 해당되는 경우일 것이며, 치아의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