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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시론]돈이냐? 환자냐?/김수남

관리자 기자  2004.10.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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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변에서 치과의사가 개원에 성공했다고 하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과연 치과의원을 개원해 성공했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대체로 돈을 좀 벌었다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표현인 것 같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많이 가지기를 희망하는 것이기도 하다. 돈은 모든 면에서 가능성을 내포하는 기본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부자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며칠 전 모 일간지에 치과 진료비에 관한 기사가 있어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치과진료비를 원가에 20배나 받고 있다는 제목 하에 진료에 따라 14배, 12배, 16배 등으로 많이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많은 환자들이 치과진료비가 비싸다고 하는 경향이지만 이렇게 수치로 확인시킨 것은 별로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더욱이 기사에 대한 의견 쓰는 난에는 많은 의견이 있었으며, 비난이 난무하고 있음을 보았다. 특별히 내용상 치과의사로 보이는 분은 치료비의 원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고 또 그에 대한 공격도 많이 받고 있었다.
치과 치료비를 원가에 이득을 부가시켜서 계산하는 일반 상행위로 본다면 치과진료비는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치과진료비는 이익을 내려는 일반 상행위와 전혀 다른 것이다.


그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보수(報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보수는 치료에 대한 감사의 예물로서 그 감사의 크기가 개인의 상태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전문직에서 그 유형은 마찬가지이다. 종교기관에서의 헌금이나 변호사의 보수도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치료의 종류나 환자의 심정이나 기타 환경에 따라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감사의 크기를 의료분야는 수가(酬價)라는 것으로 가격을 설정하고 이를 기초로해 환자로부터 진료비를 징수하고 있다. 아직도 종교계는 신도가 자신의 감사의 정도를 정하여 헌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수가라는 액수 자체가 환자의 개인능력이나 생활환경이나 경제상황에 비추어볼 때 차이가 큰 것도 사실이지만 이를 정하는 것은 아마도 그 시대의 사회적 여건에 맞추어 치과의사들의 협의에 의하여 적정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치료비는 쓰인 약품이나 원료나 치과의사의 경력이나 기술의 숙련성을 감안하여 원가나 이득을 표시하여 상업적으로 계산 할 수는 없다. 치료비를 상업적 입장에서 본다면 환자는 과도한 이윤을 누린다고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며 치과의사는 타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비굴한 짝 맞추기를 위해 고통을 당 할 수밖에 없다.
치료비는 심정적으로 이뤄지는 물질적 거래이므로 상업적 잣대로 측정 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치과의료비에 관한 모든 사항은 치과의사와 환자와의 윤리성에 부합한 신뢰가 크게 부각되는 과제가 된다.


그러나 소수의 치과의사들이 치과의료의 문제를 상업적으로 계산적으로 이용하므로 환자와의 갈등을 유발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다른 치과의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환자들은 의과계와 달리 치과의료는 생명과의 관계에서 연관성이 적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치료형태가 귀금속을 사용하는 보철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가에 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치과의사들 중에는 치과의료업이 하나의 사업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하고 돈버는 수단으로 환자를 대하는 분도 있는 것 같다. 의료전문직이라는 숭고한의미의 직업을 통해 상업적으로 치부를 한다면 이는 질병으로 고통 받으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환자를 악용하여 돈을 버는 비열한 치과의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만일 이렇게 돈을 벌고 이를 자랑삼으며 크게 성공했다고 한다면 자랑이 아닌 치욕이 됨을 잊어서는 안된다. 치과계의 앞날을 위해서도 이러한 치욕이 결코 자랑이 되어서도 안된다. 물론 치과의사의 생계가 위협받을 정도로 어려운 지경에 있다고 해서도 안된다.


치과의사들은 경제적 문제로 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