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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차한잔의 사색>
치과의사는 소시민인가 ?

관리자 기자  2001.03.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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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없는 사람들은 돈을 세고, 흡사 의자가 ‘나는 가구다’ 하고 그 자리에 그저 있는 것처럼 살고 있다 도시가 눈으로 덮인 것 같던 이국적인 풍경의 겨울도 지나가고 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아침 출근길과 사고를 먼저 걱정하는 내가 조금은 무미건조하게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폭설이 내리던 날, 아이와 함께 아파트 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들었었다. 아이가 그날 저녁 일기에 내년에도 폭설이 내렸으면 좋겠다는 일기를 쓴 것을 보고 그 동심에 미소지었던 기억이 난다.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며 출근길 걱정없이 그리움이나 즐거움으로 그 눈을 바라보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그리움에 밤을 지새고 친구와 꿈을 이야기한 적이 언제였던가? <전 혜린의 박 인수 교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리움이 없는 사람들은 돈을 세고, 흡사 의자가 ‘나는 가구다’ 하고 그 자리에 그저 있는 것처럼 살고 있다고 하였는데 내가 혹시 그렇게 변해가는 것은 아닌지. 살아온 날보다 살아 갈 날이 적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는 나이에 문득 우리 자신을 둘러보면 그리움 같은 것들은 멀리 잊은 채 단지 환자를 보고 갖가지의 계산만을 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거리를 걷다보면 간혹 마주하는 ‘거리의 악사들’이 있다. 그들의 선율과 목소리에 찬사를 보내기도 하고 그 분방한 자유로움과 행인들의 기분 좋은 시선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거리의 악사는 거리의 악사일 뿐이다.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괜찮은 악사들처럼 아마도 우리들은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거리의 한 구석을 지키는 평범하거나 조금 괜찮은 치과의사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 평범함이 지닌 평화로움은 이 사회의 안전 지대에 사는 사람들만이 지닐 수 있는 특권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안전 지대에는 스스로를 소시민이라고 여기고 이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드러나지 않게 대중에 파묻히고 싶은 소시민적 생각이 유교의 중용의 정신과도 부합하여 우리 나라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뜨이지 않는 소시민으로 남고 싶어하는 것 같다. 소시민’에 대한 정의는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중간에 위치하는 소생산자, 소상인 및 봉급생활자, 자유직업자 등의 총칭이라고 되어 있고, 흔히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소시민 근성이 있다고 표현한다. 소시민이 지닌 평범성의 미학과 그 한계를 논할 필요는 없겠으나, 우리 치과의사들의 생각과 삶은 어떠한가 궁금하다. 직업에 관계없이 자신의 내부의 지성에 귀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소시민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얕은 앎이 불행의 근원’이라고 한 김태길의 수필에서와 같이 지식이 양심인 전문가 사회에서 잘못되거나 부족한 전문 지식을 지니고 있거나, 전문 지식밖에는 아는 것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불균형된 지성을 지닌 사람들 또한 소시민의 범주에 들 것이다. 또한 대중의 눈높이에만 맞추어 급급하게 사는 것도 소시민의 전형일 수 있겠다. 치과의사들이 흔히 선호하는 전화번호는 ‘28’이 들어가는 번호인데 이는 ‘이빨’과 발음이 비슷하여 일반인들이 외기 쉬워 이 번호의 선점에 신경을 쓰는 이들이 많다. 사실 ‘이빨’이라는 단어는 발음하기에도 좋지 않고 저속해 보이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치아’나 ‘이’ 대신에 이 단어가 국민들의 눈과 귀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에 맞추어 광고하는 것인데, 이 사소한 번호가 자기비하를 시키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광고에 있어서도 수준 낮은 상술과 내부의 필요 없는 견제도 우리의 소시민 근성을 부채질 한다. 지식은 없는데 광고로 환자를 모으는 이들 중에는 사람들의 눈높이 광고를 위해 여러 방식을 동원한다. 사실 어필하는 광고의 내용과 수준은 민도의 척도라고 한다. 아무런 이해력 없이 “내게 힘을 주는 나의 xx 카드야”를 노래 부르는 아이들 속에 광고의 힘은 숨어 있다. 이를 이용해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상업적 이유로 언론에 흘리는 의사도 분명 질 낮은 소시민이고, 정확한 정보를 알리려 해도 비합리적인 광고 규제로 사회를 의료 정보의 부재화로 이끄는 정부나 의사 그룹도 분명 비합리적인 소시민들의 모임이다. 한 민족이나 그룹의 전반적인 상승은 지적인 면이든 지위든 간에 그룹 구성원 전체의 고양된 의식이 없으면 요원할 것이다. 많은 논란에도 전문의가 되지 못하는 치과의사 사회, 밥그릇을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에 서로간의 발목을 잡는 광고 규제, 그리고 나아가 이 사회에 만연한 비합리성에 대한 우리의 자포자기와 무심함은 점점 우리를 국제 사회에서 세련되지 못하고 예의 없는 ‘현대판 평민 집단’으로 몰고 가게 될 것이다. 진정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이제는 거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