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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차 한 잔의 사색>
당신들의 천국

관리자 기자  2001.07.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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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리는 ‘그들만을 위한 천국’을 ‘우리들의 천국’인 것처럼 여기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얼마 전 같이 근무하는 20대 직원에게 인상 깊었던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대학 시절에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이 문득 생각나서 최인훈의 <광장>을 아느냐,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어보았는가? 하며 반응을 보았더니 웬 듣도 보도 못한 작가의 소설이냐는 표정으로 모르겠다고 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1960년, 70년대에 현대 문학사의 획을 그으며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 매김하였던 작품들에 별 관심이 없나 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문학적 정서도 무섭게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현대의 고전’중의 하나인 <당신들의 천국>에는 나환자촌인 소록도를 새로운 천국으로 가꾸려는 병원장 조백헌의 노력과 좌절이 담겨져 있다. 그는 남다른 신념과 적극적인 실천으로 소록도를 나환자들의 새로운 천국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정작 나환자들이 볼 때 그가 만들려는 천국은 나환자들을 위한 것이 아닌 병원장 개인의 ‘당신들의 천국’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수평적인 사랑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정상인이 나환자라는 불쌍한 집단에 대하여 베풀어주기 위하여 일방적으로 시도하는 ‘천국 만들기’로는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천국을 이룰 수 없다는 메시지를 이 소설은 강하게 담고 있다.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 내는 많은 일들이 그와 관련된 사람들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우리들의 천국’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 어느 특정한 사람들만이 누리는 ‘당신들의 천국’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게는 조그만 사업체의 경영에서부터 크게는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정책에 이르기까지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어떤 천국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예컨대 미국 사회가 자랑하는 발달된 복지 혜택은 대다수의 이민자들에게 ‘당신들의 천국’으로 비친다. 소수 민족의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이 심한 복지 법안이 그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병원을 경영하며 페이 닥터를 고용하는 원장들은 혹시 당신만의 비전을 얘기하며 페이 닥터에게 성실한 진료를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역으로 병원에서 일하는 월급쟁이 의사인 당신은 그 병원이 자신을 포함한 ‘우리들의 천국’을 만들어 가는 것으로 착각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의사들이 만든 병원에서 일하는 치과의사인 당신은 혹시 그들이 가꾸어 가는 ‘의사들만의 천국’에서 이곳이 우리 ‘치과의사들의 천국’도 되는 것처럼 즐거워하며 지내는 것은 아닌지? 혹시 우리는 ‘그들만을 위한 천국’을 ‘우리들의 천국’인 것처럼 여기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힘이 있는 당신이 만들어 놓은 천국은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만의 천국’으로 비치는 것은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지혜를 구할 일이다. (orthodaniel@hanmail.net) 문화복지위원회 문화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