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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차 한 잔의 사색>
대통령의 어머니

관리자 기자  2001.09.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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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들의 어머니가 만들어낸 그대로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얼마 전 TV 뉴스에서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장면이 있었다.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학원으로 가는 차량을 타기 위해 뛰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비춰주면서 학교 수업 후에 아이들이 쉬지도 못하고 계속 경쟁적으로 무엇인가를 ‘배우러’ 다녀야 하는 상황과 학원, 과외 등 사교육비의 과잉 지출이 우리 교육의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여러 번 듣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정말 우리는 아이들의 교육을 너무 많이 시키는 것인가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존경받는 대통령들의 어머니에 관한 일화를 모은 ‘대통령을 키운 어머니들’(원제 First Mothers, 보니 앤젤로 지음, 나무와 숲 刊)에 보면 대통령의 어린 시절에 어머니는 어떠한 철학으로 아들의 교육을 위해 노력하였는가에 대하여 구체적인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어머니들의 교육열은 한마디로 ‘극성스럽다’는 표현이 옳다. 요람에서부터 책을 읽어 준 어머니들의 정성 덕분에 20세기를 이끈 미국의 11명의 대통령들은 모두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책을 읽을 줄 알았다. 또한 이 어머니들의 공통점은 아들에게 강인한 체력을 기를 수 있는 운동과 함께 악기, 댄스, 연극 등의 ‘예술적 감수성’을 심어 주는데도 최선을 다하였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훗날 세상의 진실을 깨닫고 세상의 어두움을 아는 나이에도 빛을 잃지 않고 세계의 도처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원동력을 심어준 분들로 대통령들은 그들의 어머니들을 기억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대대적인 공격을 계획하던 와중에도 워싱턴에 극비 명령을 내려 어머니날 축하 편지를 전달하게 했던 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당선되자 백악관 집무실에 어머니의 초상화부터 걸고 구십이세의 노모를 위해 직접 피아노를 연주했던 해리 트루먼, 이들은 강한 어머니의 극성스러운 교육열과 헌신에 감사하고 어머니의 조언을 귀담아 들으며 자란 강한 남성들이었다. 이런 대통령의 어머니들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의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하루 스케줄 표를 짜며 사람들로 넘쳐 나고 교통지옥인 도시에서 차를 몰아 영재교육원, 운동센터에 데려가랴, 영어학원 셔틀버스 시간에 맞추어 보내랴 뒷바라지에 정신이 없다. 위의 대통령들의 예화를 들지 않더라도 부모가 시간을 쪼개고 돈을 투자하여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는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최고만을 지향하며 불필요한 경쟁심을 유발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여러 분야를 가르치며 아이들의 인격의 형성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교육을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TV 뉴스에서 우려하듯 학원을 많이 보내는 것을 걱정할 일이 아니라 얼치기 교육열과 진정한 교육의 차이를 논하고, 아이를 ‘억압’하지 않으면서 ‘많은 것’을 가르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교육의 거시적인 목표는 우리 아이가 지금 옆집 친구나 같은 학교의 그룹에서 얼마나 잘하는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좋은 인성(人性)을 지니며, 세계의 여러 나라들과 정보와 자본과 인력을 교류하며 살아갈 때 미래의 진정한 리더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살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리더십에 관하여 탁월한 저서인 ‘거인들의 발자국’(한 홍, 두란노 刊)에서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좋은 리더십의 4대 요소로 1) 균형 감각(지성과 감성과 역경에 대한 대처 능력을 골고루 갖추는 것), 2) 인격/신뢰성, 3) 능력, 4) 융화력/팀워크 창조력을 들었다. 과연 현재 우리 나라의 리더들이 제대로 이러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우리의 교육은 ‘더’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고 부모의 각별한 정성과 헌신이 ‘더’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어머니들의 교육에 대해서 ‘극성스러움’을 비판하여야 할 것이 아니라 아이의 인성과 미래의 리더로서의 자질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에 대하여 교육 방식에 신중함을 기하는 ‘현명한 극성스러움’을 권해야 할 것이다. (orthodaniel@hanmail.net) 문화복지위원회 문·화·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