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떼보리 : 예테보리의 현지식 발음
첫째는 매끈한 표면인 임플란트는 점차 퇴조하고 산부식 또는 산화막 등 어떤 방법이든지 간에 골유착을 더욱 더 증진시킬 수 있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 있겠고, 따라서 보철시기를 더욱 더 앞당길 수 있게 되면서 빨리 수복하고자 하는 환자의 요구도를 최대한 충족시킬 수 있도록 될 것 같고, 둘째는 골과의 접촉부가 아닌 즉 연조직 접촉부에서는 여전히 기계로 깎은 표면이 강세를 유지하면서 더 나은 조직과의 결합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이 지속적으로 연구될 것 같고, 셋째로는 보철 수복분야에서도 작게는 좀더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인상용 코핑이 매식체상부의 인상으로 단순화 되듯이 보철과정 역시 간편하도록 하는 abutment의 간소화와 단일화가 진행될 것이고, 크게는 치과 인상법이 기존의 방법에서 획기적으로 변화되면서 심지어 인상과정이 없어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보철물 제작법 역시 수세기동안을 풍미해왔던 주조법이 서서히 퇴조하고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한 scanning과 milling에 의한 더욱더 정밀한 보철 수복법이 서서히 고개를 들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골조직이나 연조직 역시 stem cell이나 BMP 등을 이용한 tissue engineering을 이용한 새로운 창조의 걸음마도 점차 그 보폭을 빨리해 나갈 것으로 생각되어진다고 하겠다.
연수를 모두 마친 다음날인 8월 29일 아침에는 약간의 느긋한 마음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모든 짐을 꾸려서 check out하고 호텔을 나섰다. 그렇지만 예정(?)대로 선생들은 모두 양복을 빼어 입고 며칠간 머물렀던 호텔 문을 나섰다.
오전에는 홍학, 바다표범, 순록, 각종 오리 등이 놀고 있는 동물원- 사실 동물원이라기 보다는 공원이 더 적절한 표현으로 여겨짐-을 여유있게 산책하면서 맑은 공기도 쐬고 사진도 찍었다. 오후에는 그동안 기대해 왔던 Brnemark Osseointegration Center를 방문하여 Branemark교수를 직접 뵈러 갔다.
나선형의 좁은 4층 계단을 올라가서 좋은 projector들이 있는 세미나실로 들어갔고, 나의 제안에 따라서 기립박수를 받으면서 등장한 장본인은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아주 활달하고 반갑게 우리를 환영해 주었고, 교수의 간단한 현황소개 및 강연이 있었고, 각본(?)대로 사진촬영이 있었다. 처음 기대보다는 조금 더 지친 얼굴에서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골유착의 과정과 노벨상 장기 후보로서의 행보(?)가 상당히 험난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센터 내부의 진료실, 입원실, 그 동안의 연구과정에 사용되었던 각종기구, 재료 등을 관람하고는, 고풍스러운 센터 건물 앞에서 단체사진 촬영 후 중국 식당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가게 되었다.
이 때 다들 여행 떠나서 처음 먹어보는 김치-현지 가이드 아주머니가 집에서 손수 가져온-맛에 환호성을 질렀다.
점심 후에는 스웨덴의 최신형 고속열차인 X 2000을 타고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의 우등열차와 새마을의 중간급쯤 되는 정도의 기차를 타고 약 3시간 10분 정도를 달려서 스톡홀름에 도착하게 되었다. 역 대합실을 빠져나오는데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 보길래 이 인간들이 한국인을 처음 보나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부대가 모두들 하나같이 양복을 빼어 입고 이탈리아의 마피아단처럼 하고 나왔기 때문이라고 대기하고 있던 american indian처녀- 순수한 100% 한국산 처녀라고 함(?)- 같은 현지가이드가 설명해 주었다.
스톡홀름대에 유학 온 대학원생이라는 가이드의 숨가쁜 스웨덴에 대한 안내 방송을 자장가로 들으면서 Scandic Ariadne호텔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에서 소매치기단이 대거 입국했고 아랍인처럼 생긴 사람들을 조심하고 지갑을 절대 앞이나 뒷주머니에 넣지 말라는 협박을 들으면서- 그럼 지갑을 어디다 넣으라는 말이야?- 전망이 좋은 방으로 골라서 들어갔다.
30일날 햇살이 전면 통유리창을 뚫고 강렬하게 비치는 바람에 피곤함을 무릅쓰고 일어나게 되었고, 아침 뷔페식당에서 각종 맛있는 음식을 뒤로 하고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는 오대리를 보게 되었다. 주로 여자들이 판을 친다는 시의회 등의 청사, 왕궁 등을 주마간산으로 보고, 오후에는 진수식을 하고 10분(?) 만에 침몰되었다는 세계 최초의 전함- 우리나라의 거북선은 증거가 없기 때문에 최초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함-을 건져 올린 바사박물관을 성질 급한 가이드의 명령에 따라 뛰어 다니면서(?) 구경하였고, 찢어지게 가난하다가 순식간에 재벌이 되었지만 40대에 요절했다는 밀레의 모조품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는 조각공원을 관람하고는 Silja line의 2700명이 탄다는 호화유람선에 승선하게 되었다.
밤 10시경까지 해가 지지 않는 발트해의 아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