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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차한잔의 사색>
소비문화 소고(小考)

관리자 기자  2001.11.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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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이란 단순한 가난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사상과 의지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만들어낸 간소한 삶의 형태이다 - 나카노 고지 친한 친구이거나 사회생활을 하며 알게 된 사람들의 생활상을 들여다보면 돈을 벌어서 쓰는 방법도 가지가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얼마 전 선배 한 분을 곁에서 지켜보니 이 양반의 절약 정신은 가히 도인(?) 수준이다. 물은 조금씩 오래 틀어 놓으면 수도 요금이 덜 나간다고 밤새 찔찔 나오게 하여 받아쓰고, 겨울이면 옷을 두껍게 입을지언정 난방 하는 법이 없어 그 집에 가는 손님은 때 아닌 혹한(?)에 시달려야 한다. 외식하는 것이 아까워서 평일이건 주말이건 악착같이 집에서 밥을 먹어 아이들은 그 흔한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는 것이 소원이다. 직업이 의사인 그 분의 병원에 가면 오전에 손을 씻고 닦은 일회용 티슈를 항상 책상에 펼쳐 두어 말린 뒤 오후에 다시 사용한다. 직원들에게 비누 한 장도 아껴 쓰라는 말을 그가 한다면 차라리 유머러스하다. 그를 보면 현대를 사는 ‘신(新) 자린고비’란 별명이 잘 어울린다. 그런데,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다른 면에서의 지출이다. 첫째는, 자동차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새차를 사면 동급의 최고급 사양을 구입한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한 1년쯤 지나면 슬슬 차에 싫증이 나서 안달을 하다가 몇 달 안에 새로운 모델의 차로 바꾼다. 또 하나는,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마셨다 하면 소주건 위스키건 가리지 않고 폭음을 하여 수십 만원씩 술값을 내곤 한다. 가만 계산을 해보면 그가 차를 1, 2년 정도 더 타면서 등록비를 아끼거나 술을 한두 번만 덜 마셔도 매 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호텔 레스토랑에서 근사하게 스테이크를 먹어도 돈이 남겠고 수돗물 좀 팍팍 틀어 쓰는 여유를 부려도 괜찮겠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어찌 보면 그의 지출 명세는 근검절약의 정신이 배었다기보다 다소 치우쳐있는 그의 소비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작은데 아끼고 큰데 쓴다는 명제를 지니고 사는 ‘현대판 자린고비’ 류(類)의 사람들은 ‘생활의 풍요로움’을 위해서 작지만 소중한 일에 넉넉히 쓰고 크지만 의미 없는 일에 엄격히 줄여서 써야한다는 합리적 지출론에 반한 생활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것은 절약에 대한 신념과 철학이라기보다 자기 위주의 균형 잡히지 않은 소비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치를 하지 않으면서 균형 잡힌 절약과 소비를 하는 것은 지성인의 미덕이다. 그러나 절약을 강조하지만 왜곡된 소비를 하는 사람은 나카노 고지의 ‘청빈이란 단순한 가난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사상과 의지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만들어낸 간소한 삶의 형태이다’라고 한 말을 새겨들어야 하겠다. 또한 철저한 근본주의자로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하며 극도로 단순하고, 검약하고, 가난한 생활을 하였던 스콧 니어링의 극단적이긴 하나 일관된 철학과 삶의 양식을 보며 각자의 생활을 돌이켜 볼 필요도 있겠다. 성실하고 정직한 돈벌기와 함께 ‘조화로운 소비’에 가치를 둔 사람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화로운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orthodaniel@hanmail.net) 문화복지위원회 문·화·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