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김영호 칼럼 - 차한잔의 사색>
우정에도 비상구가 있다?

관리자 기자  2001.12.01 00:00:00

기사프린트

우정도 한 때의 사랑처럼 추억(?)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런 일들을 통해 기어코 배우고 마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떠나 낯선 나라에서 생활했던 적이 있다.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도 잠시 생활용품도 사고 월세도 내면서 살다 보니 외국에서의 생활은 건조하고 외롭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든다. 이럴 때면 그리워지는 것이 고향에 두고 온 오랜 친구의 얼굴이다. 한국에서 오히려 친구들과 무덤덤하게 얘기를 나누게 되는 것은 항상 만날 수 있고 통화할 수 있다는 기분이 앞서서 그러나 보다. 그러고 보면 진로, 연애 문제로 고민하는 청년이거나 결혼하여 아이들 키우며 아등바등 사는 중년이거나 삶을 정리하는 노년이건 간에 문득 외로울 때 전화 한 통 편하게 할 수 있는 벗이 있다면 그 맛의 각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저 건너편에서 들리는 낯익은 친구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각별한 우정을 유지하기는 훨씬 힘든 문제가 되어버리나 보다. 동심에서 벗어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세계에 진입하면 자칫 잘못하다간 친구를 잃기 십상이고, 그래서 세간에서는 ‘친구와 돈 거래를 하지 마라’거나 ‘친구와 동업을 하면 안 된다’고 조언을 한다. 얼마 전 의사 사회의 공동 개원의 분위기를 따라 이십년 지기 친구 둘이서 개업을 시작하였다.꼭 신혼살림 차리듯 장비며 기구를 사기도 하고 즐거운 듯 지낸 지 1년 쯤 후에 이들은 성격적인 면이나 병원 경영의 스타일이 차이가 나는 것을 절감하며 헤어지게 되었다. 이과정을 지켜보니 부부가 이혼하는 것보다 더 심하게 따지는 것도 많고 감정의 골이 깊어져서 두 친구는 다시는 보지 못할 사람들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우정도 한 때의 사랑처럼 추억(?)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런 일들을 통해 기어코 배우고 마는 것이다. 살다 보면 친구가 육체적이나 경제적 위기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는 수가 있다. 지옥에 있는 것 같다는 친구의 얼굴을 보면 조금이나마 있는 돈이라도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되는 경우가 있다. 혹자는 그 도움으로 친구마저 잃을까봐 두려워 돕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사업상으로 돈을 거래하거나 도와주는 것은 우정을 위해서 금기 사항이라고 얘기를 한다. 그러면 그 친구가 사업이 실패하여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을 때 생활비를 도와주는 것은 우정으로서 가능한 일인가? 혹시 그는 우정에도 ‘비상구’를 만들어 우정의 유지가 힘이 들고 손해를 보게 될 때면 슬그머니 탈출을 하는 것은 아닐까? 자식에 대한 사랑처럼 우정에 있어서도 빠져나갈 ‘비상구’를 전혀 열어 놓지 않는 사람도 본다. 그는 친구 때문에 돈을 잃기도 하고 귀한 시간을 허비하고 때로는 친구의 멍에를 대신 짊어지기도 한다. 그는 살아가는 요령이 없는 우둔한 사람인가, 아니면 주위의 박수를 받아야 할 우정의 전령사인가? 우정도 쉽게 버릴 수 있는 비정한 시대에 하나님과 형상만 닮았을 뿐 한계투성이인 우리는 친구 간에 지닐 수 있는 최소한의 약속과 신의라도 지키려 노력할 뿐이다. 항상 빠져나갈 ‘비상구’를 열어 놓는 이들은 우정 또한 그 문으로 어느 틈에 사라져버리지 않는지 유심히 살펴보시라. (orthodaniel@hanmail.net) 문화복지위원회 문·화·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