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 료 / 자 / 본 / 의 / 개 / 방
2002년 새해가 밝아오기 전 의료계에서는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교정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치과를 미국 전역에 소유하고 있는 미국계 회사가 한국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동아일보의 한 기자가 전격 공개한 것이다(2001년 12월 12일자 동아일보 사회면). OCA(Orthodontic Centers of America)라고 알려진 이 회사는 국내의 지명도 있는 교정과 의사를 접촉하고 한국 지사장 자리를 좋은 조건으로 제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교정과 의사들의 세계는 생각보다 좁아서 같이 어울려서 공부도 하고 술 한 잔 하기도 하는 친구들 중에 회사가 처음 접촉을 시도한 의사가 있어서 이 놀라운 사실을 1년여 전부터 듣고 있었던 필자로서는 이 시도가 가져올 미래의 상황에 대한 예측과 대비에 대해 조심스럽게 주위에 ‘교정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왔었다.
생각해 보니 몇 년 전 미국의 한 대학 병원의 교정과에 방문 교수로 있던 시기에 이 회사를 접한 적이 있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회사의 직원이 교정과를 방문하여 수련을 막 마치는 교정과 의사들에게 피자를 사주며 슬라이드로 회사의 자랑과 근무 조건 등을 프리젠테이션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공짜로 피자를 먹는 즐거움에 옆에서 듣고 있자니 이 회사의 규모나 시스템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님을 단박 알겠다.
처음 계약을 하는 교정과 의사에게 선불로 고액을 캐쉬로 주고 적지 않은 연봉과 회사의 스탁 옵션(stock option)을 제시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나도 한 번 해볼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 직원이 가져온 두꺼운 카탈로그에는 미국 전역에 분포한 회사의 교정과 클리닉 위치와 현재 의사를 필요로 하는 자리가 표시되어 있었다.
예컨대 네브라스카의 어느 자리와 플로리다의 어느 자리가 비어 있는데 자세한 조건은 이렇다 등을 얘기하며 막 교정과를 마치는 젊은 선생들에게 어필(?)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을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미국의 교수들에게 들어보니 이 회사는 처음의 조건이 좋아서 외국에서 유학을 온 학생이나, 미국인 학생 중에서 공부는 잘 했는데 학부 때 대부를 많이 받아 부채를 갚기 위해 급히 돈이 필요하거나 개업할 자금이 없는 교정과 의사들, 소위 젊고 배고픈 교정과 의사들(hungry, young orthodontists)에게 좋은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계약 기간이 길고 근무 시간당 진료하는 환자수가 많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덧붙였다.
과연 의료 개방은 언제 이루어질 것이며 미국의 대규모 자본을 지닌 회사가 한국 시장에 입성을 하기는 하게 될 것인가, 그 여파는 어떠할 것인가, 그 효과적인 대응책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침착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의료 개방이 되어 이런 회사가 국내에서 사업을 시작하면 우선적으로 치과의 비보험 시장, 특히 교정과 시장(market)의 재편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격을 낮추고 TV에 날마다 광고를 해대는 미국판 교정 클리닉의 전략에 국내 교정과 의원들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와 다른 의견으로 기존 교정 클리닉의 환자보다는 사랑니도 빼고 보철도 하면서 교정을 하는 일반 개업의들의 교정 환자가 비슷한 가격대인 미국계 회사로 대거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어쩌면 ‘싸게’ 불러서 교정 환자를 유치하였던 덤핑 작전이 ‘가격은 그와 비슷하게 낮게 하면서 미국식 교정을 한다’는 고차원의 덤핑 작전에 밀릴 확률이 높다.
진정한 실력 없이 싸구려 잡지에나 몇 편 객관성 없는 광고를 내고 말솜씨로만 환자를 보는 일종의 ‘껍데기’ 전문가들이 정리되는 계기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지금은 자금력이나 마케팅 모두 비교가 안되는 한국의 소시민적 치과의사들은 별다른 대책이 없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이런 변화의 물결은 비단 교정 분야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그저 비난만 하고 있는 사람이나 집단은 퇴보하거나 사라질 것이다.
네트워크를 주무기로 가지고 있는 몇몇 대표적인 치과 그룹은 시간을 두고 이에 대한 대비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네트워크 형태의 모델에서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로 발전하다가 여차하면 기업화할 계획도 가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교정계의 중견 리더 그룹에서는 국내의 특화된 기업을 자체적으로 세워 대항할 계획을 세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광고에만 수백만 달러를 쏟아 붓는 거대 기업과의 경쟁에서 <실력>과 <특화> 이전에 <자본의 우위>를 지킬 수 있을지가 변수로 보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그 동안 내원한 환자 수와 평균 수입을 근거로 너무도 편한 하루를 보내고 있